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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모의 논문 노트 · 2026-08-11

AI가 짜주는 대학 수강신청, 시간표 혁명인가 통제의 시작인가

한경모글 · 한경모

AI가 최적의 대학 수강 계획을 짜준다는 연구가 화제입니다. 이는 단순히 시간표를 넘어, 복잡한 지식 노동을 자동화하는 기술의 신호탄일 수 있습니다. 다만 그 원리와 한계를 정확히 알아야 미래를 제대로 가늠할 수 있습니다.

AI가 짜주는 대학 수강신청, 시간표 혁명인가 통제의 시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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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 기술이 ‘최적화 계산기’이지 ‘지혜의 샘’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AI가 제시하는 효율적인 경로는 수많은 선택지 중 하나일 뿐, 그 길이 반드시 나의 행복과 성장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대학 수강신청은 늘 한바탕 전쟁과 같습니다. 졸업 학점을 채우기 위한 필수 과목, 선수 과목, 전공 선택 과목들이 얽힌 미로 속에서 최적의 경로를 찾는 일은 학생과 학사 담당자 모두에게 큰 짐이었습니다. 최근 이 문제를 AI로 풀겠다는 흥미로운 연구가 공개되었습니다.

‘KNOWPLAN’이라는 이름의 이 연구는, 간단히 말해 학생 개개인을 위한 맞춤형 ‘수강 내비게이션’을 만드는 기술입니다. 자극적인 제목에 휘둘리지 않고, 이 기술의 원리가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경계하며 바라봐야 할지 차분히 들여다보겠습니다. 연구는 정확히 읽어야 합니다.

1. 문제의 핵심: 흩어진 설명서와 뒤엉킨 조립 과정

KNOWPLAN 논문이 진단한 문제의 본질은 명확합니다. 대학의 학위 과정 안내는 마치 거대한 레고 세트를 조립하는데, 설명서가 여러 나라 말로 된 종잇조각, 이메일, 웹사이트에 흩어져 있는 것과 같습니다. 심지어 어떤 설명서는 오래되어 지금 모델과 맞지도 않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두 가지 큰 산을 넘어야 합니다.

첫째는 '정보 추출'의 문제입니다. 학과 홈페이지의 HTML, 강의계획서 PDF, 학교 행정 시스템의 데이터(보통 API라는 정해진 형식으로 제공됩니다) 등 제각각인 형식에 담긴 정보를 한곳에 모아 일관된 형태로 정리해야 합니다. ‘A과목을 들으려면 B과목을 먼저 이수해야 한다’는 규칙, ‘C와 D는 동일 과목으로 처리된다’는 예외 조항까지 정확히 뽑아내야 합니다.

둘째는 '경로 계획'의 문제입니다. 이렇게 정리된 정보를 바탕으로, 학생의 현재 상황(이미 들은 과목, 남은 학기, 목표 학점 등)에 맞춰 최적의 수강 계획을 짜야 합니다. 조기 졸업이 목표인 학생과, 특정 분야 전문가가 되고 싶은 학생의 최적 경로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기존의 접근법은 이 두 가지 문제가 뒤엉켜 있었습니다. 마치 요리를 하면서 그때그때 필요한 재료만 냉장고에서 꺼내 쓰는 것과 같았습니다. 내가 ‘김치찌개’를 만들기로 마음먹었으면, 김치와 돼지고기만 찾게 됩니다. 냉장고에 싱싱한 소고기가 있다는 사실은 눈에 들어오지 않으니, ‘소고기뭇국’이라는 더 나은 선택지는 아예 고려 대상조차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계획(요리)이 정보 탐색(재료 찾기)을 제한하는 셈입니다.

2. KNOWPLAN의 해법: '일단 재료부터 파악하자'

KNOWPLAN의 핵심 아이디어는 이 문제를 둘로 쪼개 푸는 것입니다. 요리 비유를 다시 가져오겠습니다. 일단 어떤 요리를 할지 정하기 전에, 냉장고와 찬장에 있는 모든 재료를 식탁 위에 꺼내 목록을 만드는 작업부터 합니다. 이것이 바로 ‘지식 그래프(Knowledge Graph)’ 구축입니다.

여기서 ‘AI 에이전트(AI Agent)’가 등장합니다.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정보를 수집해 문제를 해결하는 작은 AI 비서라고 생각하면 쉽습니다. 여러 명의 AI 에이전트가 각자 PDF, 웹사이트 등을 뒤지며 학사 규정, 과목 정보, 선수과목 관계 같은 ‘재료’들을 수집합니다. 그리고 이 정보들을 그냥 나열하는 게 아니라, 관계망으로 엮어 거대한 지식 지도를 만듭니다. ‘컴퓨터구조 과목은 논리회로의 선수과목이다’, ‘자료구조와 알고리즘은 동일 과목으로 중복 수강이 안 된다’와 같은 관계들이 선으로 연결된 지도입니다. 이 지도가 바로 지식 그래프입니다.

이렇게 먼저 완벽한 '재료 목록(지식 그래프)'을 만들어두면 어떤 장점이 있을까요?

  • 모든 가능성을 열어둘 수 있습니다. 특정 계획에 얽매이지 않고 대학의 모든 규정과 과목 관계를 객관적인 사실로 저장하기 때문에, 사람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창의적인 조합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김치찌개’만 생각하던 사람에게 ‘사실 이 재료들로 불고기 전골도 가능하다’고 알려주는 것과 같습니다.
  • 시스템이 훨씬 견고해집니다. 정보 추출 부분과 계획 수립 부분이 분리되어 있어, 한쪽에서 오류가 나도 다른 쪽에 미치는 영향이 적습니다. 학사 규정이 바뀌면 지식 그래프만 수정하면 되고, 새로운 계획 목표(예: ‘AI 부전공 추가’)가 생기면 이미 만들어진 지식 그래프를 활용해 새로운 경로만 탐색하면 됩니다.

지식 그래프가 완성되면, 그 다음은 쉽습니다. 학생이 “나는 6학기 만에 조기 졸업하고 싶고, 데이터 과학 관련 과목을 최대한 많이 듣고 싶어”라고 입력하면, AI는 완성된 지도를 보며 최단 경로를 찾아내듯 최적의 수강 계획을 여러 개 제시합니다.

3. 새로운 기술이 아니다? 내비게이션의 진화와 평행선

사실 이러한 접근법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일상에서 비슷한 원리의 기술을 매일 쓰고 있습니다. 바로 스마트폰의 내비게이션 앱입니다.

초창기 내비게이션은 기기 안에 지도가 내장된 형태였습니다. 마치 20년 전 전문가 시스템처럼, 정해진 규칙과 데이터 안에서만 길을 찾았습니다. 도로가 새로 생기거나 일방통행으로 바뀌면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업데이트를 하려면 서비스센터에 가거나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정보 추출(지도 제작)과 경로 계획이 한 몸이었던 시절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T맵이나 카카오내비는 다릅니다. 지도 데이터는 거대한 중앙 서버(클라우드)에 ‘지식 그래프’처럼 구축되어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됩니다. 그리고 우리 스마트폰은 이 지도를 바탕으로 실시간 교통정보까지 반영해 최적의 경로를 ‘계획’해 보여줍니다. 지도 제작과 경로 계획이 완벽히 분리된 것입니다. 덕분에 우리는 갑자기 막히는 길을 피하고 예상치 못한 빠른 길을 안내받을 수 있습니다.

KNOWPLAN은 이 원리를 대학 캠퍼스 안으로 가져온 셈입니다. 복잡한 학사 규정과 과목 정보가 ‘지도’이고, 학생의 졸업 목표가 ‘목적지’입니다. 과거 학사 담당자가 종이 지도를 보며 손으로 길을 그려주던 방식을, 실시간 교통상황(수강신청 여석, 변경된 규정 등)까지 반영하는 똑똑한 내비게이션으로 바꾸려는 시도입니다.

구분기존 학사 지도KNOWPLAN 기반 지도내비게이션 앱 비유
정보 소스담당자 기억, 분산된 문서통합된 지식 그래프클라우드 지도 데이터
계획 수립경험 기반, 수동 계산데이터 기반, 자동 최적화실시간 경로 탐색 알고리즘
개인화 수준제한적 (일반적 경로 추천)고도화 (목표별 맞춤 경로 설계)목적지, 경유지 설정
담당자 역할규정 확인 및 행정 처리멘토링, 질적 상담운전자 (최종 결정)
한계정보 누락, 휴먼 에러 가능성데이터 오류, 과잉 최적화 위험GPS 오류, 비현실적 경로 추천

4. 한계는 명확하다: 쓰레기 데이터와 과잉 최적화의 함정

이제 이 연구의 한계를 냉정하게 짚어볼 시간입니다. 흥분하기엔 이릅니다. 모든 기술에는 명암이 있고, 특히 AI는 그 그림자가 짙을 수 있습니다.

첫째, ‘쓰레기가 들어가면 쓰레기가 나온다(Garbage In, Garbage Out)’는 데이터 과학의 제1원칙을 피할 수 없습니다. AI 에이전트가 아무리 똑똑해도, 학습하는 원본 데이터, 즉 대학이 제공하는 강의계획서 PDF나 웹사이트 정보에 오류가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AI는 그 오류를 ‘진실’로 믿고 완벽하게 잘못된 수강 계획을 자신 있게 추천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필수 과목 코드가 잘못 기재된 문서를 학습했다면, 학생은 졸업에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를 수 있습니다. 이때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요? 잘못된 정보를 올린 학교일까요, 그것을 그대로 학습한 AI일까요, 아니면 AI를 맹신한 학생일까요? 이 책임 소재는 아직 법적 공백지대입니다.

둘째, ‘과잉 최적화’의 함정입니다. AI는 주어진 목표, 예를 들어 ‘최소 학기로 최대 학점 이수’라는 목표에 대해서는 인간을 뛰어넘는 최적의 해답을 찾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학생에게 ‘가장 좋은’ 교육적 경험일까요? 학점 효율은 조금 떨어지더라도, 인생의 스승을 만날 수 있는 명강의나, 전혀 다른 분야의 교양 과목에서 얻는 지적 유희와 같은 가치는 숫자로 측정되지 않습니다. AI는 ‘효율’을 계산할 수는 있어도 ‘지혜’나 ‘경험’의 가치를 알지 못합니다. 교육을 학점 이수라는 단순한 최적화 문제로 환원시켜 버릴 위험이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흔한 오해 두 가지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 오해 1: “AI가 모든 걸 알아서 해주니 학생은 편해지겠다.” > 그렇지 않습니다. KNOWPLAN은 조언자이지 결정자가 아닙니다. 여러 대안 경로를 비교하고, 각 경로의 장단점을 파악하며, 최종적으로 어떤 길을 갈지 선택하는 책임은 여전히 학생에게 있습니다. 오히려 더 많은 정보를 바탕으로 더 신중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정보 홍수 속의 의사결정’이라는 새로운 과제를 안게 될 수도 있습니다.

- 오해 2: “이건 대학생에게나 필요한 좁은 분야의 기술이다.” > 이것이야말로 이 연구의 핵심을 놓치는 것입니다. 수강신청 계획은 ‘지식 기반 계획 수립’이라는 더 큰 문제의 한 사례일 뿐입니다. 이 기술의 원리는 변호사가 복잡한 판례와 법규를 분석해 최적의 변론 전략을 짜거나, 자산 관리사가 고객의 목표와 시장 상황에 맞춰 최적의 투자 포트폴리오를 설계하는 문제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KNOWPLAN은 교육 시장을 넘어, 전문직 지식 노동의 미래를 엿볼 수 있는 창문입니다.

5. 우리가 진짜 추적해야 할 신호: '데이터 주권'과 '노동의 재정의'

이 기술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묵직한 질문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데이터 주권’의 문제입니다.

한 학생의 수강 이력과 계획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단순히 과목 목록이 아닙니다. 학생의 관심사, 학습 속도, 강점과 약점, 미래의 커리어 경로까지 암시하는 매우 민감하고 가치 있는 개인 정보입니다. 만약 KNOWPLAN 같은 시스템이 보편화된다면, 이 데이터를 누가 소유하고 통제하게 될까요? 학생 본인일까요, 학교일까요, 아니면 이 AI 서비스를 제공하는 거대 테크 기업일까요?

상상해 보십시오. 전국 수백만 대학생의 학업 계획 데이터가 한 기업의 서버에 쌓인다면, 그 기업은 대한민국 엘리트 인재들의 역량과 잠재력을 가장 정확하게 예측하는 데이터베이스를 갖게 됩니다. 이 정보는 기업 채용, 금융 신용 평가, 보험 상품 개발 등 무궁무진한 방식으로 상업화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편리함을 얻는 대가로, 우리 삶의 경로에 대한 통제권을 거대 플랫폼에 넘겨주게 될지도 모릅니다. 지금부터 ‘교육 데이터 주권’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또 다른 신호는 ‘노동의 재정의’입니다. 이 기술은 학사 담당자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단순 행정 업무와 규정 확인 같은 반복적인 일은 상당 부분 자동화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곧 학사 담당자의 역할이 ‘규정 전문가’에서 진정한 ‘교육 멘토’로 진화할 기회이기도 합니다. AI가 처리해준 시간을 활용해, 학생들의 진로 고민을 상담하고, 학업 동기를 부여하며, 정서적인 지지를 제공하는 등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고차원적인 역할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비단 교육계뿐 아니라, AI와 협업해야 하는 모든 지식 노동 분야에서 벌어질 변화의 축소판입니다.

6. 결론: 똑똑한 계산기, 그러나 지혜는 인간의 몫

KNOWPLAN 연구는 AI가 복잡한 규칙과 정보를 이해하고, 인간의 계획 수립을 돕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중요한 사례입니다. 얽히고설킨 정보의 미로를 헤쳐 나갈 똑똑한 ‘내비게이션’의 등장은 분명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

다만 우리는 이 기술이 ‘최적화 계산기’이지 ‘지혜의 샘’이 아님을 명심해야 합니다. AI가 제시하는 효율적인 경로는 수많은 선택지 중 하나일 뿐, 그 길이 반드시 나의 행복과 성장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때로는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길을 돌아가는 용기, 데이터가 설명하지 못하는 가치를 알아보는 안목이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결국 기술의 진보는 우리에게 ‘좋은 교육이란 무엇인가’, ‘성공적인 삶의 경로란 무엇인가’와 같은 본질적인 질문을 다시 던집니다. 그 답을 찾는 것은 여전히 우리 인간의 몫입니다. 메커니즘과 예언은 구분해야 합니다. AI가 미래를 ‘결정’할 것이라는 예언에 휩쓸리지 말고, 그것이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정확히 이해하고 우리 삶의 주도권을 지켜나가야 할 때입니다.


독자가 던질 법한 질문들

Q. 당장 내년부터 우리 학교에서도 이 기술을 쓸 수 있는 건가요? A.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KNOWPLAN은 아직 연구 단계의 기술 프로토타입입니다. 실제 대학에 도입하려면 각 학교의 천차만별인 학사 시스템과 데이터를 연동하고, 지속적으로 변하는 규정을 반영하도록 시스템을 맞춤 개발하고 유지보수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들기 때문에, 일부 선도적인 대학에서 시범 도입을 거쳐 상용화되기까지는 최소 몇 년 이상 걸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Q. AI가 추천한 대로 수강했는데 졸업을 못 하면 누가 책임지나요? A. 매우 중요한 질문이며, 아직 명확한 법적 답이 없는 영역입니다. 현재로서는 AI는 법적 책임을 지는 주체가 아니므로, 최종적인 확인과 선택의 책임은 전적으로 학생 본인에게 있습니다. AI는 강력한 '조언' 도구로 활용하되, 학교의 공식적인 졸업 요건 확인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합니다. 향후 이런 AI 서비스가 보편화되면, 서비스 제공자의 책임 범위에 대한 법적, 사회적 합의가 반드시 마련되어야 할 것입니다.

Q. 이런 AI가 결국 교수나 학사 담당자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 아닌가요? A. 일자리의 '소멸'보다는 '역할 전환'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단순하고 반복적인 규정 확인, 학점 계산 등의 업무는 AI가 대체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확보된 시간에 학사 담당자나 지도 교수는 학생과의 심층 상담, 진로 설계, 정서적 지원 등 더 인간적인 상호작용이 필요한 고부가가치 업무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마치 의사가 진단 보조 AI를 활용해 더 정확한 진료에 집중하는 것처럼, 전문직의 업무 효율과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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