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석의 기술 해부 · 2026-08-22
112년 묵은 법으로 VC를 겨눈 미국, AI '투자 공식'이 끝나는 신호탄
미국 법무부가 100년 넘은 법으로 실리콘밸리의 큰손 VC를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AI 시대의 빠른 기술 변화가 과거의 투자 관행과 충돌하며, 이제 ‘판단의 값’이 완전히 달라졌음을 알리는 중요한 사건입니다.

“AI 시대에 VC의 역할은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판단의 값’이 극적으로 비싸지고 있다.”
얼마 전 지인이 만든 작은 서비스 개발을 도와준 적이 있습니다. 사용자가 올린 글의 맥락을 파악해 자동으로 태그를 붙여주는 간단한 AI 기능이었습니다. 시중에 나온 두 개의 서로 다른 AI 모델을 놓고 저울질했죠. 하나는 범용 글쓰기에 강점이 있었고, 다른 하나는 코드 분석 같은 특정 분야에 특화돼 있었습니다. 당시엔 목적이 달라 경쟁자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6개월 만에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범용 모델이 업데이트되더니 코드 분석까지 꽤 능숙하게 해내기 시작한 겁니다. 결국 두 회사는 이제 명백한 경쟁자가 됐습니다. 이런 일, AI 업계에선 점심 메뉴 고르는 것만큼이나 흔합니다.
최근 미국 법무부(DOJ)가 실리콘밸리의 대표적인 벤처캐피털(VC)인 안드레센 호로위츠(a16z)를 조사하고 있다는 소식이 바로 이 문제와 맞닿아 있습니다. 겉보기엔 흔한 기업 조사 같지만, 꺼내 든 법이 무려 1914년에 만들어진 ‘클레이턴 법’입니다. 112년 묵은 법으로 최첨단 AI 산업의 돈줄을 정조준한 셈입니다. 이게 대체 무슨 의미인지, 과장을 걷어내고 그 실체를 한번 해부해 보겠습니다.
1. 옆집 떡볶이집과 우리 치킨집, 사장님이 같으면 안 된다?
이번 조사의 핵심은 ‘상호 겸직 이사(interlocking directorates)’라는, 말이 좀 어려운 개념입니다.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동네에 아주 잘 되는 치킨집과 떡볶이집이 있다고 상상해 보시죠. 처음엔 아무 문제 없었습니다. 치킨 먹고 싶은 사람은 치킨집 가고, 떡볶이 먹고 싶은 사람은 떡볶이집에 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치킨집이 ‘치즈 떡볶이’를 사이드 메뉴로 내놓고, 떡볶이집은 ‘닭강정’을 팔기 시작합니다. 이제 두 가게는 분식 시장에서 경쟁자가 된 겁니다.
이때, 두 가게의 의사결정을 하는 핵심 인물, 예컨대 이사회 멤버가 동일인물이라면 어떨까요? 이 사람은 두 가게의 신메뉴 출시 계획, 가격 전략, 재료 공급처 정보를 모두 알게 됩니다. 설령 나쁜 마음이 없더라도, 은연중에 한쪽 가게에 유리한 조언을 하거나 두 가게가 서로 심하게 경쟁하지 않도록 조율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 이번 달엔 둘 다 할인 행사는 하지 맙시다” 같은 암묵적인 합의가 생길 수 있다는 겁니다.
클레이턴 법 제8조는 바로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한 법입니다. 경쟁 관계에 있는 두 회사에 한 사람이 동시에 이사로 앉는 것을 금지합니다. 시장의 공정한 경쟁을 해칠 ‘구조적 가능성’ 자체를 차단하겠다는 취지입니다. 이번에 문제가 된 a16z의 경우, 벤 호로위츠 파트너는 데이터 분석 플랫폼 회사인 ‘데이터브릭스’ 이사회에, 마틴 카사도 파트너는 데이터 전송 전문 회사인 ‘파이브트란’ 이사회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법무부는 현재 두 회사가 경쟁 관계라고 판단했고, 한 VC에 속한 파트너들이 경쟁사의 이사회에 각각 참여하는 것 역시 이 법의 정신에 위배된다고 본 것입니다. 투자자의 선한 의도와는 무관하게, 구조 자체가 문제라는 시각입니다.
2.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 AI 산업의 예측 불가능성
VC 업계는 억울하다는 입장입니다. a16z가 두 회사에 처음 투자할 때만 해도 둘은 명백한 협력 관계였습니다. 상황을 좀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죠.
- 파이브트란: 이 회사는 기업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데이터를 한곳(데이터 창고)으로 안전하고 쉽게 옮겨주는 ‘디지털 이삿짐센터’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전문용어로는 ETL(Extract, Transform, Load), 즉 데이터를 추출, 변환, 적재하는 것을 주력으로 합니다.
- 데이터브릭스: 이 회사는 그렇게 모인 데이터를 분석하고 가공해 AI 모델을 만들거나 사업에 필요한 통찰력을 얻는 ‘디지털 요리 연구소’에 가까웠습니다. 데이터로 뭔가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곳이죠.
처음엔 파이브트란이 재료(데이터)를 깔끔하게 손질해 가져다주면, 데이터브릭스가 그 재료로 멋진 요리(분석, AI 모델)를 만드는 이상적인 분업 구조였습니다. 그런데 AI 기술이 무섭게 발전하면서 경계가 허물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데이터브릭스는 자체적으로 데이터를 가져오는 기능을 강화하며 ‘요리 연구소’가 직접 ‘재료 손질’까지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파이브트란 역시 단순히 데이터를 옮기는 것을 넘어, 간단한 분석 기능까지 제공하며 사업 영역을 넓혔습니다. 어제의 파트너가 오늘의 경쟁자가 된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 구분 | 초창기 (2018년경) | 현재 (2024년) |
|---|---|---|
| 데이터브릭스 | 빅데이터 분석, AI 모델 개발 플랫폼 (주로 '요리'하는 곳) | 데이터 통합(ETL) 기능 내재화, '재료 손질'까지 영역 확장 |
| 파이브트란 | 데이터 통합, 전송(ETL) 전문 도구 (주로 '재료 손질' 및 배달) | 분석 기능 일부 추가, 손질한 재료로 간단한 '요리' 제안 |
| 경쟁 구도 | 상호 보완적 관계 | 데이터 통합 및 분석 초기 단계에서 직접 경쟁 |
이런 현상은 AI 산업 전반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AI는 특정 문제 하나만 푸는 기술이 아니라, 어디에나 적용될 수 있는 ‘범용 기술’이기 때문입니다. 이미지 생성 AI를 만들던 회사가 영상 생성 AI로 사업을 확장하고, 챗봇 만들던 회사가 기업용 검색 엔진 시장에 뛰어드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VC 입장에서는 포트폴리오를 짤 때, 5년 뒤 두 회사가 경쟁하게 될지를 예측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진 셈입니다.
3. CASE 도구와 노코드: 역사는 반복된다
사실 이런 고민이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저는 19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에 불었던 ‘케이스(CASE) 도구’ 열풍을 기억합니다. CASE는 ‘컴퓨터 지원 소프트웨어 공학(Computer-Aided Software Engineering)’의 약자로, 설계도를 그리면 컴퓨터가 알아서 코드를 만들어준다는 꿈의 도구였습니다. 당시 VC들은 장밋빛 미래를 그리며 수많은 CASE 도구 회사에 돈을 쏟아부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어땠을까요?
대부분의 CASE 도구 회사들은 비슷한 기능을 내세우며 경쟁하다 공멸했습니다. 기술은 복잡했고, 개발자들의 실제 작업 방식과 맞지 않았으며, 결국 시장 자체가 생각만큼 커지지 않았습니다. 한 VC가 여러 CASE 회사에 투자했다면, 결국 자기 포트폴리오 안에서 제 살 깎아 먹기 경쟁을 하는 꼴을 지켜봐야 했을 겁니다.
더 가까운 예는 ‘노코드/로우코드(No-code/Low-code)’ 플랫폼입니다. 코딩 없이도 앱이나 웹사이트를 만들게 해준다는 점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죠. 저도 몇 가지 툴을 직접 써봤습니다. 처음에는 웹사이트 제작용, 앱 프로토타입용, 업무 자동화용 등 각자 영역이 명확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웹사이트 빌더가 앱 제작 기능을 추가하고, 업무 자동화 툴이 데이터베이스 기능까지 흡수하면서 서로의 영역을 무섭게 침범하고 있습니다. 만약 한 VC가 버블(Bubble)과 웹플로우(Webflow), 그리고 재피어(Zapier)에 모두 초기 투자를 하고 이사회에 참여했다면, 지금쯤 a16z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AI 시대의 경쟁 구도 변화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빠르고 예측 불가능합니다. CASE 도구나 노코드 플랫폼의 영역 확장이 ‘걸음마’ 수준이었다면, AI 기술의 융합은 ‘순간이동’에 가깝습니다. 이것이 바로 법무부가 100년 넘은 낡은 법까지 꺼내 들며 AI 생태계의 ‘교통정리’에 나선 이유일 겁니다.
4. 흔한 오해와 불편한 진실
이 사건을 둘러싸고 몇 가지 흔한 오해가 있습니다. 하나씩 짚어보겠습니다.
오해 1: “미국 정부가 잘나가는 VC 하나를 본보기로 괴롭히는 것이다.”
물론 a16z가 워낙 상징적인 VC이기에 표적이 된 측면은 있습니다. 하지만 법무부의 진짜 목적은 a16z 처벌 자체가 아닙니다. 이 조사를 통해 AI 산업 전체에 명확한 신호를 보내는 것입니다. ‘AI 생태계를 만드는 초기 단계부터 공정한 경쟁 환경을 해칠 수 있는 구조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선언입니다. 이는 미래에 나타날 수많은 스타트업들이 거대 VC의 ‘가족 네트워크’에 속하지 않더라도 공정하게 경쟁할 기회를 보장하려는 의도에 가깝습니다. 장기적으로는 산업 전체의 건강성을 위한 조치로 해석해야 합니다.
오해 2: “VC의 이사회 참여는 스타트업 성장을 위한 필수 요소인데, 이걸 막으면 혁신이 저해된다.”
이 주장은 상당 부분 사실입니다. 특히 초기 스타트업에게 VC의 이사회 참여는 단순히 돈을 받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VC 파트너는 수많은 성공과 실패 사례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전략적 조언을 해주고, 필요한 인재를 연결해주며, 후속 투자를 유치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저 역시 그런 도움으로 위기를 넘기는 스타트업들을 많이 봤습니다. 하지만 법무부의 관점은 다릅니다. 그 ‘도움’이 특정 VC의 포트폴리오에 속한 기업들에게만 집중되고, 그들끼리의 암묵적인 카르텔로 이어진다면 시장 전체의 혁신은 오히려 저해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부모님이 특정 자녀만 편애해서 과외를 시켜주면, 다른 자녀들이 불공평함을 느끼는 것과 비슷합니다. 따라서 VC들은 앞으로 ‘정보 방화벽(information firewall)’ 같은 내부 통제 장치를 만들거나, 이사회 참여 대신 다른 방식으로 스타트업을 돕는 방법을 찾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5. ‘판단의 값’이 비싸지는 시대
그렇다면 이번 사건이 우리에게 던지는 진짜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저는 VC라는 직업의 본질, 그리고 AI 시대에 ‘판단’이라는 행위의 가치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봅니다.
과거 VC의 역할은 ‘될성부른 떡잎’을 찾아내 물과 거름(자본)을 주는 것에 가까웠습니다. 물론 그것도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이상을 요구받게 됐습니다. 단순히 개별 나무(스타트업)의 성장 가능성뿐만 아니라, 이 나무들이 자라서 만들어낼 전체 숲(시장)의 5년, 10년 뒤 모습을 그려야 합니다. 그리고 그 숲에서 내 나무들이 서로 싸우지 않고 잘 자랄 수 있을지, 혹은 규제라는 이름의 ‘산불’이 나지는 않을지까지 예측해야 합니다.
이것은 AI 기술이 모든 산업의 경계를 허무는 ‘액체’ 같은 속성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오늘 헬스케어 AI 스타트업에 투자했는데, 3년 뒤 이 회사가 금융 데이터 분석으로 사업을 전환해 내 다른 포트폴리오 회사와 경쟁하게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따라서 VC들은 이제 다음과 같은 훨씬 더 어려운 질문에 답해야 합니다.
- 이 기술의 최종 도착지는 어디인가?
- 이 회사가 확장할 수 있는 모든 인접 시장은 무엇이며, 그곳에 잠재적 경쟁자는 없는가?
- 규제 당국은 이 시장의 경쟁 구도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결국 ‘어떤 말에 베팅할까’를 넘어, ‘어떤 경주에 참가해야 하는가’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한번 베팅하면 다른 말에는 걸 수 없게 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이는 VC의 투자 결정 속도를 늦추고, 더 많은 법률 및 시장 분석을 요구하게 될 겁니다. ‘감’에 의존하던 투자는 줄고, 철저한 시나리오 분석에 기반한 투자가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역사적으로 새로운 기술은 언제나 인간의 역할을 바꿔왔습니다. 계산기가 등장했을 때 암산 능력의 가치는 떨어졌지만, 어떤 계산을 해야 할지 결정하는 능력의 가치는 올라갔습니다. AI가 코드를 짜주기 시작하면서 단순 코딩 능력보다 어떤 소프트웨어를 만들지 설계하는 아키텍트의 역할이 중요해진 것과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이번 규제 움직임은 VC의 역할을 끝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판단의 값’을 극적으로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더 이상 돈과 네트워크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시장의 판세를 읽고 미래의 규제 지형도까지 내다보는 통찰력, 그 판단의 무게가 전에 없이 무거워진 시대가 시작된 것입니다.
독자가 던질 법한 질문 3가지
Q. 이번 조치로 AI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가 위축되지는 않을까요? A. 단기적으로는 투자 속도가 조절될 수 있습니다. VC들이 잠재적 경쟁 관계를 검토하는 데 더 많은 시간과 법률 자문 비용을 쓰게 될 테니까요. 하지만 전체 투자 규모가 급격히 줄어들지는 않을 겁니다. 오히려 VC들이 더욱 신중하게 옥석을 가리게 되면서, 소수의 유망한 기업에 더 큰 규모의 투자가 집중되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될 수 있습니다. 어중간한 스타트업들은 투자 유치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Q. 제가 스타트업을 운영 중인데, 경쟁사에 투자한 VC로부터 투자를 받아도 될까요? A. 과거에는 흔한 일이었지만, 이제는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위험 신호가 됐습니다. 투자 유치 미팅 때 반드시 물어봐야 합니다. “저희의 잠재적 경쟁사에 투자하셨는데, 이사회 참여 등 이해 상충 문제를 어떻게 관리하실 계획입니까?”라고 말입니다. VC가 명확한 정보 차단 계획이나 내부 규정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그 투자는 받지 않는 편이 나을 수 있습니다. 나중에 회사가 성장했을 때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Q. 이건 a16z 같은 거대 VC에만 해당하는 문제 아닌가요? 작은 VC나 엔젤 투자자는 상관없지 않나요? A. 법무부가 첫 타겟으로 가장 큰 상징성을 가진 a16z를 겨눴을 뿐, 이 법의 원칙은 모든 투자자에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 이번 조사가 선례로 남게 되면, 앞으로는 작은 VC나 여러 스타트업 이사회에 참여하는 엔젤 투자자들 역시 잠재적 이해 상충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마치 고속도로에 새로운 과속 단속 카메라가 생기면 모든 운전자가 조심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규모와 상관없이 AI 생태계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이 알아야 할 새로운 ‘게임의 규칙’이 만들어지고 있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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