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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석의 기술 해부 · 2026-10-19

AI 규제, 50명은 죽어야 시작하자는 속내

정우석글 · 정우석

AI 챗봇 클로드 개발사가 '50명 사망 또는 1조 원 피해'가 발생해야 정부가 규제에 나서야 한다는 법안을 내놨습니다. 이는 기술의 위험성을 축소하고 책임을 회피하려는 업계의 속 보이는 숫자 게임일 뿐입니다.

AI 규제, 50명은 죽어야 시작하자는 속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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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에 인간의 가치는 코드를 짜는 '실행' 능력에서, 그 결과가 안전하고 공정한지 묻는 '판단' 능력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그 판단의 값을 헐값에 넘기자는 게 이번 제안의 속내입니다.”

며칠 전, 앤스로픽의 AI 챗봇 '클로드(Claude)'를 시험 삼아 써보다가 황당한 일을 겪었습니다. 간단한 데이터 처리 자동화 코드를 짜달라고 했는데, 제법 그럴싸한 결과물을 내놓더군요. 그런데 뭔가 이상했습니다. 컴퓨터 팬이 굉음을 내며 돌기 시작한 겁니다. 확인해 보니 AI가 만든 코드는 특정 조건에서 무한히 반복 실행되는, 소위 '무한 루프' 버그를 품고 있었습니다. 더 기가 막힌 건, 클라우드 서비스 사용량 알림이 오기 전까지 AI는 제게 '작업이 완료되어 유휴 상태'라고 뻔뻔하게 답했다는 점입니다. 하마터면 하룻밤 사이에 수백만 원짜리 요금 폭탄을 맞을 뻔했습니다.

이런 자잘하고 예측 불가능한 사고조차 제대로 통제 못 하는 게 지금 AI의 현주소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AI를 만든 회사가, AI 때문에 50명이 죽거나 1조 원 넘는 피해가 나기 전까지는 정부가 본격적으로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들고나왔습니다. 솔직히 말해 코미디에 가깝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정책 제안이 아니라, AI 산업이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고 싶어 하는지를 보여주는 노골적인 선언문입니다.

규제 문턱, 왜 '사망 50명'인가: 속 보이는 숫자 게임

앤스로픽이 제시한 법안의 핵심은 간단합니다. AI 모델로 인해 50명 이상이 사망하거나, 재산 피해가 10억 달러(우리 돈 약 1조 3천억 원)를 넘어서는 '재앙적 피해'가 발생했을 때 비로소 정부, 구체적으로는 상무부가 개입해 해당 AI의 개발과 사용을 통제할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이들은 이런 규제가 '프론티어 AI', 즉 인간과 유사하거나 그 이상의 능력을 보이는 최첨단 AI의 폭주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 숫자들은 아무리 뜯어봐도 이상합니다. 이는 마치 '음주운전으로 한 번에 50명 이상 사망자가 나오기 전까지는 면허 취소 같은 강력한 단속을 하지 맙시다'나 '아파트 부실공사로 한 동이 통째로 무너져 1조 원 피해가 나기 전까지는 감리 강화를 미룹시다'라고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피해가 발생한 뒤에야 움직이는 것은 규제가 아니라 수습입니다. 다른 산업의 안전 기준과 비교하면 이 제안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수준인지 더욱 명확해집니다.

산업 분야규제 개입 기준 (사망자)비고
항공1명사고 즉시 해당 기종 운항 중단 및 전수 조사 착수
제약1명 (심각한 부작용)즉각적인 판매 중지, 리콜 및 원인 규명
원자력0명 (사고 위험 감지)방사능 누출 등 실제 피해가 없어도 위험 징후만으로 가동 중단
AI (앤스로픽 제안)50명'재앙적 시나리오'에만 한정, 점진적 피해는 무시

항공이나 제약 산업에서는 단 한 명의 희생자만 나와도 산업 전체가 멈춰 서서 원인을 파헤치고 재발 방지책을 마련합니다. 그것이 사회적 합의이자 상식입니다. 그런데 유독 AI 산업만 수십, 수백 명의 희생자를 '혁신을 위한 비용'으로 미리 계산서에 올려놓겠다는 발상입니다. 이들이 '혁신 저해'를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진짜 속내는 규제 준수 비용을 아끼고, 예측 불가능한 AI의 사고에 대한 법적 책임을 최소화하려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40년 전의 데자뷔: CASE 도구와 '코딩 없는 개발'의 꿈

사실 이런 '규제는 나중에, 혁신부터'라는 주장은 처음 듣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기술 업계에서는 수십 년째 반복되는 레퍼토리입니다. 저는 1980년대 후반과 90년대에 유행했던 'CASE(Computer-Aided Software Engineering) 도구'의 광풍을 똑똑히 기억합니다.

당시 CASE 도구는 '소프트웨어 공학의 혁명'으로 불렸습니다. 개발자가 복잡한 코드를 한 줄 한 줄 짜는 대신, 멋진 그래픽 화면에서 설계도만 그리면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뚝딱 만들어진다는 꿈의 도구였습니다. 컨설턴트들은 이 도구만 쓰면 버그 없는 완벽한 소프트웨어를 비전문가도 만들 수 있다며 기업들을 현혹했습니다. '코딩의 종말'이 온다고들 했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참담했습니다. CASE 도구는 너무 비싸고, 느리고, 복잡했으며, 현실 세계의 예측 불가능한 요구사항을 전혀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결국 소수의 제한된 영역을 제외하고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이후에도 '4세대 언어', '노코드/로우코드 플랫폼' 등 이름만 바꾼 비슷한 시도들이 계속됐습니다. 이들의 공통된 약속은 '기술이 인간의 실수를 없애고 복잡한 과정을 자동화해 줄 것이니, 우리에게 맡기라'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AI가 내놓는 약속과 정확히 똑같습니다. 앤스로픽을 비롯한 AI 기업들은 자신들의 기술이 가져올 장밋빛 미래를 이야기하며,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위험은 '통제 가능하다'거나 '사소하다'고 주장합니다. 제가 겪은 '무한 루프' 사건처럼, 통제는커녕 자신들이 만든 AI가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태반인데도 말입니다.

역사는 반복됩니다. 기술의 완벽함을 맹신하고 현실의 지저분한 복잡성을 외면할 때, 그 끝은 항상 값비싼 실패였습니다. 앤스로픽의 '사망 50명' 제안은 바로 그 실패의 역사를 되풀이하겠다는 선언처럼 들립니다.

'눈에 보이는' 피해와 '보이지 않는' 비용

앤스로픽의 제안이 가장 교묘한 지점은, 피해의 범위를 '사망'과 '재산'이라는 아주 명확하고 물리적인 기준으로만 한정했다는 점입니다. 이는 AI가 사회에 끼칠 수 있는 훨씬 더 광범위하고 심각한, 그러나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비용들을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행위입니다.

AI가 초래하는 진짜 위험은 다음과 같은 '보이지 않는' 비용에 있습니다.

  • 1. 사회적 신뢰의 붕괴: AI가 만든 그럴싸한 가짜 뉴스와 선동적인 콘텐츠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무한히 확산되어 선거 결과를 왜곡하고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피해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습니다.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이 피해가 1조 원보다 가볍다고 할 수 있을까요?
  • 2. 편향과 차별의 고착화: AI가 채용이나 대출 심사에서 과거 데이터에 학습된 편견을 바탕으로 특정 성별, 인종, 지역 출신을 체계적으로 탈락시킨다면 어떻게 될까요? 50명이 죽지는 않았지만, 수만 명의 기회가 사망 선고를 받는 셈입니다. 이런 구조적 차별이 낳는 사회적 갈등 비용은 누가 책임져야 합니까?
  • 3. 지식과 노동의 양극화: AI가 회계, 법률 검토, 리서치 등 중간 수준의 지식 노동을 빠르게 대체하면서 발생하는 대량 실업과 소득 불평등 심화는 규제 대상이 아닌 걸까요? 소수의 AI 기술 전문가와 플랫폼 소유주에게 부가 집중되고 나머지 대다수는 단순 노동으로 밀려나는 사회는 건강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AI 기업들은 '터미네이터' 같은 공상과학적 위협을 전면에 내세우길 좋아합니다. 대중의 시선을 '킬러 로봇'이라는 먼 미래의 문제로 돌려놓으면, 바로 지금 자신들의 서비스가 만들어내고 있는 편향, 허위 정보, 불공정 같은 현실의 문제들을 감출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망 50명'이라는 기준은 바로 이런 교묘한 프레임 전환 전략의 일환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흔한 오해 두 가지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 오해 1: "AI는 중립적인 도구일 뿐이다." 아닙니다. AI는 데이터를 먹고 자랍니다. 그 데이터에 담긴 인간 사회의 편견과 왜곡을 그대로, 때로는 오히려 증폭해서 학습합니다. AI는 빈 종이가 아니라, 이미 세상의 편견으로 빼곡하게 채워진 낙서장과 같은 상태로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 오해 2: "강한 규제는 혁신을 막는다." 아닙니다. 안전벨트와 에어백 의무화 규제가 자동차 산업을 망하게 했습니까? 오히려 더 안전하고 신뢰성 높은 차를 만드는 기술 혁신을 이끌었습니다. 제대로 된 규제는 산업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아니라, 사회적 신뢰를 얻고 장기적으로 성장하기 위한 '품질 보증서'와 같습니다.

진짜 문제는 '판단의 값'이 올라간다는 것

결국 이 모든 논쟁의 핵심은 규제 수위 조절 문제가 아닙니다. 진짜 문제는 '누가 최종적인 판단을 내릴 것인가' 하는 '판단의 주도권' 싸움입니다. 앤스로픽의 법안은 사실상 '판단'의 권한을 기업에게 넘겨달라는 선언입니다. 무엇이 위험한지, 어디까지가 허용 가능한 피해인지, 언제 개입해야 하는지를 자신들이 정하겠다는 뜻입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의 역할은 단순 반복적인 '실행(doing)'에서 복합적인 '판단(judging)'으로 옮겨갑니다. 저 역시 코드를 한 줄 한 줄 짜던 엔지니어였지만, 지금은 AI가 생성한 코드를 보고 '이 코드가 비즈니스 논리에 맞는가? 보안 취약점은 없는가? 유지보수하기 좋은 구조인가?'를 판단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씁니다. 의사들은 AI가 판독한 의료 영상을 보고 최종 진단을 내리고, 변호사들은 AI가 찾아준 판례를 바탕으로 변론 전략을 짭니다.

AI 시대에 인간의 진짜 가치는 코드를 짜거나 글을 쓰는 '실행' 능력에서 점점 더 '판단' 능력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이 코드가 안전한가? 이 글이 윤리적인가? 이 결정이 공정한가? 이 질문에 답하는 능력, 즉 '판단의 값'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습니다. AI는 유능하지만 책임감 없는 신입사원과 같습니다. 그 신입사원이 내놓은 결과물을 검토하고 최종 결재 도장을 찍는 것은 결국 경험과 통찰을 갖춘 인간, 즉 팀장의 몫입니다.

앤스로픽의 제안은 바로 이 '판단의 값'을 헐값으로 만들려는 시도입니다. '50명 사망'이라는 극단적인 기준을 통과하지 않는 한,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잘못된 판단과 그로 인한 피해는 문제 삼지 말아 달라는 요구입니다. 우리는 이 판단의 주도권을 결코 AI를 만드는 기업들에게 넘겨주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무엇을 지켜봐야 하는가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는 이 거대한 흐름 속에서 무엇을 주시해야 할까요? 일반 시민과 정책 입안자들이 눈여겨봐야 할 신호는 다음과 같습니다.

  • 1. 규제 주체의 독립성과 전문성: 앤스로픽은 규제 권한을 기술 산업 진흥에 가까운 상무부에 주자고 합니다. 이는 선수에게 심판을 맡기자는 격입니다. 항공 사고를 조사하는 교통안전위원회(NTSB)나 의약품을 관리하는 식품의약국(FDA)처럼, 산업계로부터 독립성과 고도의 전문성을 갖춘 별도의 AI 안전 규제 기구를 만들자는 논의가 힘을 얻는지 지켜봐야 합니다.
  • 2. '사후약방문' 대 '사전예방'의 힘겨루기: 다른 고위험 산업처럼 AI 모델을 시장에 출시하기 전에 독립적인 기관에서 '안전성 및 편향성 평가'를 의무화하는 '사전예방' 원칙이 도입되는지, 아니면 일단 출시하고 사고가 터진 뒤에야 움직이는 '사후약방문' 모델이 주류가 되는지가 중요합니다. 전자의 목소리가 커져야 합니다.
  • 3. 손해배상 책임의 구체화: AI가 일으킨 피해에 대해 플랫폼(앤스로픽, 오픈AI 등)이 어디까지 책임을 지는지 구체적인 법적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해야 합니다. AI 개발사가 '우리 도구를 잘못 사용한 사용자 책임'이라고 발뺌하는지, 아니면 '제조물 책임법'처럼 제품의 결함에 대해 만드는 쪽에 책임을 묻는 판례가 쌓이는지에 따라 시장의 질서가 완전히 달라질 것입니다.

독자가 던질 법한 질문들

Q. 그래도 AI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안전 기준을 만들겠다고 나선 것 자체는 긍정적인 신호 아닌가요? A. 고양이에게 생선 가게를 맡기는 격입니다. 의도는 좋게 포장할 수 있지만, 그 기준이 결국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책임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설정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자동차 회사가 '시속 200km로 정면충돌해서 사망하지만 않으면 안전한 차'라고 스스로 기준을 정하게 둘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사회적 합의에 기반한 규제는 이해관계를 가진 기업이 아니라 독립적인 외부의 몫이어야 합니다.

Q. AI 기술이 너무 복잡하고 빠르게 변해서 정부가 제대로 규제하기 어렵다는 말도 일리가 있지 않습니까? A. 맞는 말입니다. 기술의 모든 세부 사항을 정부가 따라잡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최소한의 기본 원칙'을 세우고 이를 지키도록 강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부가 AI 모델의 모든 코드를 검사할 필요는 없습니다. 대신 기업에게 '투명성'과 '설명가능성'을 요구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당신네 AI가 특정인의 대출 신청을 거절했다면,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설명하라'고 요구하는 식입니다. 과정을 일일이 통제하는 게 아니라,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묻고 그 이유를 설명하게 만드는 방식이 현실적인 규제 방향입니다.

Q. 개발자로서 이런 흐름에 어떻게 대비해야 합니까? AI가 결국 제 일을 빼앗아갈까요? A. 단순 코딩이나 기능 구현 같은 '손'의 역할은 분명 줄어들 것입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AI가 할 수 없는 '판단'의 역할은 오히려 더 중요해지고 그 가치가 높아질 겁니다. AI가 만든 결과물을 '검증'하고, 그 결과가 가져올 파장을 '예측'하고,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도록 '지시'하는 능력이 핵심 경쟁력이 됩니다. AI를 단순히 코딩을 대신해주는 도구가 아니라, 내가 더 수준 높은 판단을 내리기 위해 부려야 할 '유능한 부사수'로 생각하고 그 사용법을 익히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당신의 몸값은 이제 키보드를 두드리는 속도가 아니라, 당신의 판단력이 결정하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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