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아람의 타임라인 · 2026-06-26
우리가 숭배한 AI는 거기에 없었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군 AI 모델 '페이블 5'는 사실 유령이었습니다. 이 해프닝은 기술에 대한 열광을 넘어, 우리 시대의 희망과 불안이 어떻게 새로운 '기술 종교'를 만들어내고 있는지 보여줍니다.

“정말 위험한 건 뭘까요? 기계 속 유령을 숭배할 준비가 된 우리의 텅 빈 마음 아닐까요?”
요즘은 없는 걸로도 얼마든지 시끄러워질 수 있나 봐요. 최근 AI 업계를 뒤집어 놓은 ‘페이블 5’라는 모델 이야기인데요, 이거 완전 현대판 도시괴담이에요. 앤트로픽이라는 회사가 만든 전설적인 성능의 AI가 곧 풀린다는 소문에 X와 레딧이 들썩였죠. 사람들은 그 미지의 존재에 온갖 기대를 투사했어요. 인간 의사를 뛰어넘는 진단 능력, 신약 개발, 뭐 거의 신의 영역에 가까운 추론 능력까지. 이름부터가 ‘페이블(Fable)’, 즉 ‘우화’인데, 사람들은 정말 우화 속 주인공을 기다리듯 설렜던 거죠.
결론부터 말하면, 그런 건 없었습니다. 앤트로픽이 공식적으로 밝혔어요. “일반에 공개된 적 없고, 설령 있었더라도 이미 폐기 수순이었을 것”이라고요. 잔뜩 부풀었던 풍선이 터지면서 김이 팍 새버린 거죠. 웃프지 않나요? 있지도 않은 AI를 기다리며 밤잠 설치고, 그게 세상에 나오면 우리 삶이 어떻게 바뀔지 토론하고, 심지어는 그 존재를 믿는 것만으로 소속감을 느끼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말이에요.
이 해프닝을 그냥 ‘기술 오타쿠들의 설레발’로 치부하면 핵심을 놓치는 거예요. 저는 여기서 우리 시대의 아주 중요한 심리적 단면을 봤어요. 이건 단순한 기술적 호기심이 아니에요. 거의 종교적 열망에 가깝습니다. 레딧의 AI 커뮤니티는 새로운 시대의 성전이고, 익명의 누군가가 흘린 ‘유출 정보’는 예언서가 되며, ‘페이블 5’는 강림을 앞둔 메시아였던 거죠.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요? AI라는 기술이 우리에게 너무나 거대하고, 강력하며, 동시에 작동 원리를 알 수 없는 ‘블랙박스’이기 때문이에요. 옛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천둥번개나 홍수 앞에서 신을 찾았듯이, 현대인들은 이해할 수 없는 기술의 힘 앞에서 경외와 공포를 느끼며 서사를 만들어내요.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전부 빼앗을 거야’라는 디스토피아적 공포와 ‘AI가 암을 정복하고 우리를 영생으로 이끌 거야’라는 유토피아적 희망 사이를 정신없이 오가는 거죠. ‘페이블 5’는 그중 가장 달콤한 희망 서사의 주인공으로 잠시 캐스팅되었을 뿐이에요.
이런 현상이 우리 삶과 관계, 정체성을 어떻게 바꾸고 있을까요? 우선, ‘무엇을 아는가’가 새로운 신분증이 됩니다. ‘페이블 5’나 ‘클로드 소네트 5 페넥’ 같은, 보통 사람은 알아듣지도 못할 암호 같은 이름을 줄줄 꿰는 건 ‘나는 미래를 아는 소수 엘리트’라는 정체성을 부여해요. 이들 커뮤니티 안에서 오가는 대화를 보세요. ‘컨텍스트 1M’이니 ‘오픈소스 모델’이니 하는 말들은 그들만의 유대감을 확인하는 암구호이자, 바깥세상과 우리를 구분하는 성벽입니다.
물론 어떤 분들은 반박할 수 있어요. “그냥 일부 사람들의 과한 기대일 뿐인데, 너무 나간 거 아니냐”고요. 하지만 그 ‘일부’가 만드는 기술과 그 기술에 담긴 가치관이 이제 우리 모두의 일상을 지배하기 시작했다는 걸 잊으면 안 돼요. 앤트로픽이 ‘안전성’을 이유로 모델 출시를 철회하고, 클로드 모델에 극도로 보수적인 윤리 필터를 적용하는 걸 보세요. 한 회사의 ‘신중함’이라는 가치가 어떤 이용자에게는 ‘검열’과 ‘답답함’이라는 현실로 다가오죠. “앤트로픽의 사용 정책에 위배되는 답변은 할 수 없습니다”라는 AI의 기계적인 답변에 빡쳐서 구독을 취소한다는 글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에요. 그들의 신념이 우리의 표현의 자유와 부딪히는 순간이죠. 이건 더 이상 기술만의 문제가 아니라 철학과 정치의 문제입니다.
‘페이블 5’ 소동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질문을 던져요. 앤트로픽은 AI가 위험해서, 혹은 안전하지 않아서 ‘페이블’을 세상에 내놓지 않았다고 하죠. 하지만 정말 위험한 건 뭘까요? 스스로 학습하고 통제 불가능해질지도 모르는 미지의 AI일까요? 아니면, 현실의 문제가 너무나 고되고 막막해서, 기계 속 유령에게서라도 구원의 약속을 듣고 싶어 하는 우리의 텅 빈 마음일까요?
우리는 지금 있지도 않은 신기루를 좇느라, 정작 우리 앞에 놓인 진짜 문제들을 외면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기술이 우리를 구원해 줄 거라는 가장 거대한 ‘우화’에 빠져서 말이죠. 어쩌면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은 더 뛰어난 성능의 AI가 아니라, 그 스크린 너머에서 똑같이 불안하고 또 기대하는 다른 사람의 얼굴일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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