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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진의 실리콘밸리 · 2026-08-04

의사당의 챗GPT, 규제 심판이 선수와 한 팀이 되었다

여우진글 · 여우진

미국 의회가 AI 규제를 논하면서 정작 업무에는 챗GPT를 가장 많이 쓴다는 소식입니다. 이는 단순한 업무 효율화를 넘어, 규제를 만들어야 할 심판이 특정 선수의 장비에만 길들여지는 '규제 포획'의 시작일 수 있습니다.

의사당의 챗GPT, 규제 심판이 선수와 한 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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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회가 자발적으로 특정 AI를 업무 표준으로 삼는 순간, 그 기업은 돈 한 푼 안 들이고 가장 강력한 로비를 한 셈입니다.

도입: 의사당의 새로운 인턴, 챗GPT

미국 의회가 인공지능(AI)을 규제할 법안을 만드는 와중에, 정작 의원실에서는 특정 AI를 가장 활발히 쓰고 있다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주인공은 오픈AI의 챗GPT입니다. 최소 70곳 이상의 하원 사무실에서 공식적으로 AI 도구 구독료를 지출했고, 그 압도적 다수가 챗GPT였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공식 기록만 이 정도니, 직원들이 개인적으로 쓰는 무료 버전까지 합하면 의사당은 사실상 챗GPT의 가장 중요한 고객 중 하나가 된 셈입니다.

표면적으로는 이상할 게 없습니다. 의원실 업무는 방대한 자료와의 싸움입니다. 수천 페이지짜리 법안을 요약하고, 복잡한 정책 보고서의 핵심을 파악하고, 지역구 유권자에게 보낼 연설문 초안을 잡는 일에 챗GPT 같은 도구는 분명히 유용합니다. ‘업무 생산성 향상’이라는 명분은 나무랄 데 없이 합리적으로 들립니다.

하지만 저는 이 현상을 단순한 기술 도입 사례로 보고 넘길 수 없습니다. 이것은 금융 시장에서 늘 경계하는 ‘이해관계의 충돌’과 정확히 같은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AI라는 새로운 산업의 경기 규칙을 만들어야 할 심판(의회)이,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 선수(오픈AI)가 만든 장비에 깊이 의존하기 시작한 셈입니다. 이 돈잔치의 청구서는 결국 누가 받게 될까요? 그 지점을 파고들어야 진짜 의미가 보입니다.

'업무 효율'이라는 달콤한 명분: 정말 생산성이 높아지는가?

의원실이 챗GPT를 쓰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생성형 AI’는 이름 그대로 무언가를 빠르고 그럴싸하게 만들어내는 데 특화되어 있습니다. 긴 글을 짧게 줄이고, 딱딱한 보고서를 부드러운 연설문으로 바꾸고, 쟁점에 대한 찬반 논리를 순식간에 정리해 줍니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정보와 싸워야 하는 의회 직원들에게는 가뭄의 단비 같을 겁니다.

쉬운 비유를 들어보겠습니다. 회사에서 모든 팀 보고서를 특정 소프트웨어의 템플릿을 써서 만들라고 지시했다고 칩시다. 처음에는 모두가 환영할 겁니다. 양식 고민 없이 내용만 채우면 되니 보고서 만드는 시간이 절반으로 줄어듭니다. 회사 전체의 보고서 생산량은 극적으로 늘어날 것입니다. 이것이 ‘생산성 향상’입니다.

하지만 몇 달 뒤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모든 보고서의 논리 구조와 문체가 비슷해지기 시작합니다. 템플릿이 제시하는 틀에 맞춰 생각하게 되니, 그 틀을 벗어나는 독창적이거나 비판적인 분석은 점점 사라집니다. 직원들은 보고서를 ‘생각해서 쓰는’ 게 아니라 ‘템플릿을 채우는’ 일로 여기게 됩니다. 생산량은 늘었지만, 결과물의 질이나 생각의 깊이는 오히려 퇴보할 수 있습니다.

의사당의 챗GPT 도입도 마찬가지입니다. 챗GPT가 만들어내는 요약과 초안은 특정 방식의 논리 구조와 데이터에 기반합니다. 의회 직원들이 이 ‘챗GPT 스타일’의 결과물에 익숙해지고 의존하게 되면, 입법 과정 전체의 사고방식이 여기에 길들여질 위험이 있습니다. 중요한 법안의 초안을 AI가 만들고, 그에 대한 반박 자료 역시 AI가 요약하고, 관련 연설문까지 AI가 쓰는 상황을 상상해 보십시오. 과연 인간의 깊이 있는 고민과 독창적인 대안이 끼어들 자리가 있을까요? ‘생산성’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입법의 질적 저하라는 더 큰 비용을 치르게 될지 모릅니다.

역사_데자뷔: 마이크로소프트의 '정부 표준' 전략

이런 현상은 역사적으로 처음이 아닙니다. 정확히 평행선을 그을 수 있는 사례가 있습니다. 바로 1990년대의 마이크로소프트(MS)입니다.

당시 MS는 윈도우 운영체제와 오피스(워드, 엑셀 등) 프로그램을 앞세워 개인용 컴퓨터 시장을 장악했습니다. MS의 진짜 무서움은 그 다음 행보에 있었습니다. 바로 정부와 공공기관을 집중 공략한 것입니다. 수많은 정부 부처와 학교가 MS 오피스를 ‘업무 표준’으로 채택했습니다. 문서는 워드(.doc)로, 계산은 엑셀(.xls)로 하는 것이 당연해졌습니다.

이렇게 되자 ‘공급자 잠김(Vendor Lock-in)’ 효과가 발생했습니다. 한번 MS 환경에 익숙해지고 모든 데이터가 그 형식으로 쌓이면, 다른 소프트웨어로 갈아타기가 극도로 어려워집니다. 마치 전셋집에 들어가 온갖 살림살이를 집에 맞춰 다 들여놓으면, 나중에 집주인이 월세를 조금 올려도 이사 비용이 더 커서 그냥 눌러앉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정부가 MS 제품을 표준으로 쓰자, 다른 기업들은 정부와 문서를 주고받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MS 제품을 사야 했습니다. 경쟁사들은 운동장에 들어설 기회조차 얻지 못했습니다. 결국 이 독점적 구조는 미국과 유럽에서 긴 반독점 소송으로 이어졌습니다.

오늘날 오픈AI의 행보는 21세기 버전의 MS 전략과 놀랍도록 닮았습니다. 의회가 챗GPT를 ‘사실상의 표준(de facto standard)’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단순히 소프트웨어 하나를 쓰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AI는 단순한 문서 도구가 아닙니다. 정보를 분석하고, 논리를 구성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인지적 인프라’에 가깝습니다. 의회가 특정 기업의 인지적 인프라에 종속된다면, 그 파급력은 MS 오피스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클 것입니다. 이는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미래의 정책과 법률의 밑그림을 그리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돈의 흐름: 보이지 않는 청구서는 누가 받나

제가 늘 집착하는 질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이 돈잔치의 청구서는 결국 누가 받는가?” 의원실이 내는 월 수십 달러의 구독료는 푼돈에 불과합니다. 진짜 비용은 다른 곳에서 발생하며, 우리 사회 전체가 그 청구서를 받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구체적으로 청구서를 받을 주체는 다음과 같습니다.

  • 1. 경쟁사와 스타트업: 정부, 특히 입법부가 특정 기업의 제품을 사용한다는 것은 그 기술의 안정성과 신뢰성을 국가가 공인해주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그 어떤 광고보다 강력한 마케팅 효과를 냅니다. 오픈AI는 이 ‘공신력’을 바탕으로 기업 시장까지 손쉽게 장악할 수 있습니다. 반면 앤트로픽이나 구글, 혹은 이제 막 시작하는 수많은 AI 스타트업들은 출발선부터 다른 경쟁을 해야 합니다. ‘의회가 쓰는 AI’라는 후광 효과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장 불공정한 경쟁 우위입니다.
  • 2. 시장 전체: 하나의 플레이어가 시장을 독점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역사가 증명합니다. 혁신은 느려지고, 가격은 올라가고, 소비자의 선택권은 사라집니다. AI 산업이 오픈AI와 같은 소수의 거대 모델 중심으로 고착화되면, 우리는 더 다양하고 창의적인 AI의 등장을 보지 못할 수 있습니다. 오픈소스 AI나,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는 새로운 AI 모델들이 싹을 틔우기도 전에 고사할 위험이 커집니다.
  • 3. 우리 모두 (국민): 가장 큰 비용은 ‘규제 포획(Regulatory Capture)’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규제 포획이란, 규제 기관이 규제 대상인 산업이나 기업에 오히려 동화되거나 포섭되어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게 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의원들과 보좌진들이 매일 챗GPT를 쓰면서 그 편리함과 논리 구조에 익숙해지면, 자신도 모르게 ‘AI란 본래 이런 것’이라는 인식을 갖게 됩니다. 나중에 AI 규제 법안을 만들 때, 자연스럽게 챗GPT 같은 거대 언어 모델에 유리한 방향으로 규칙을 설계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예를 들어, 모델의 내부 작동 방식을 투명하게 공개하라는 강력한 규제 대신, ‘윤리적 사용을 권고한다’는 식의 추상적인 규제에 그칠 수 있습니다. 심판이 특정 선수의 플레이 스타일에만 익숙해지면, 결국 그 스타일에 유리하게 편파 판정을 내리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관점단기적 이익 (의회)장기적 비용 (사회)
효율성법안 분석, 자료 작성 시간 단축독창적, 비판적 사고 감소 및 입법 품질 저하 가능성
시장 경쟁특정 기업(오픈AI)의 안정성 검증 효과시장 독과점 고착화, 혁신적 스타트업의 성장 저해
규제 형성기술에 대한 직접 경험으로 현실적 규제?'규제 포획' 발생, 특정 모델에 유리한 법안 양산 위험
직접 비용월 수십 달러의 낮은 구독료경쟁 부재로 인한 미래의 높은 사회적, 경제적 비용

흔한 오해 짚어보기: '써봐야 잘 알지'의 함정

물론 이런 주장에 대한 반론도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두 가지 오해를 짚어보겠습니다.

오해 1: “의원들이 AI를 직접 써봐야 현실적인 규제를 만들 수 있는 것 아닌가?”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기술을 전혀 모른 채 탁상공론으로 규제를 만드는 것보다는 백번 낫습니다. 하지만 핵심은 ‘어떻게’ 쓰느냐에 있습니다. 특정 회사의, 특정 모델 하나만 집중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경험이 아니라 ‘길들이기’가 될 수 있습니다. 마치 모든 음식을 한 가지 조미료로만 맛보고서 세상의 모든 맛을 안다고 착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진정으로 현실적인 규제를 원한다면, 의회는 챗GPT뿐만 아니라 경쟁사인 앤트로픽의 클로드, 구글의 제미나이, 그리고 다양한 오픈소스 모델들을 의무적으로 비교 사용하고 그 장단점을 보고서로 남겨야 합니다. 그래야만 특정 모델의 관점에 매몰되지 않고 균형 잡힌 시각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오해 2: “고작 몇십 달러짜리 구독료 가지고 너무 과한 해석이다.”

이 역시 돈의 액수만 보는 단편적인 시각입니다. 이 문제의 본질은 돈의 규모가 아니라 ‘의존성의 형성’과 ‘사고방식의 동기화’에 있습니다. 우리가 매일 쓰는 스마트폰 앱이 우리의 생활 습관을 바꾸듯, 매일 쓰는 AI 도구는 우리의 사고방식을 바꿉니다. 의회가 특정 AI의 논리 구조와 결과물 생성 방식에 익숙해지는 것 자체가 오픈AI에게는 수십억 달러의 로비 자금보다 더 값진 자산입니다. 이것이 바로 보이지 않는 ‘소프트 파워’입니다. 사용자가 스스로 제품의 생태계에 깊숙이 들어와 스스로를 잠그는 것, 이것이 현대 플랫폼 기업들이 가장 원하는 바입니다.

우리가 추적해야 할 신호들

그렇다면 이 거대한 흐름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고 미래를 가늠해야 할까요? 독자들이 직접 추적할 수 있는 몇 가지 구체적인 신호를 제시합니다.

  1. 의회의 AI 관련 지출 보고서: 앞으로 공개될 의회 지출 보고서에서 AI 도구 사용 내역이 어떻게 변하는지 봐야 합니다. 오픈AI 쏠림 현상이 더욱 심화되는지, 아니면 앤트로픽, 구글 등 다른 빅테크나 혹은 허깅페이스 같은 오픈소스 기반의 다양한 도구로 지출이 분산되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다변화의 움직임이 보인다면 그나마 건강한 신호입니다.
  1. AI 규제 법안의 구체적인 내용: ‘투명성’, ‘공정성’, ‘책임성’ 같은 듣기 좋은 말을 나열하는 법안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디테일입니다. AI 모델을 학습시킨 데이터셋의 출처를 공개하도록 의무화하는지, 모델의 핵심 작동 방식(가중치 등)에 대한 접근권을 규제 기관에 부여하는지, 다른 서비스와 쉽게 연동될 수 있도록 ‘상호운용성’을 강제하는지 등을 봐야 합니다. 이런 조항들은 시장 지배적 사업자의 해자를 허무는 강력한 견제 장치입니다. 이런 구체적인 조항이 빠진다면, 규제는 거대 기업을 위한 ‘면죄부’로 전락할 가능성이 큽니다.
  1. AI 기업의 로비스트 명단과 의회 보좌진의 이직 경로: 가장 노골적인 신호입니다. 실리콘밸리의 AI 기업들이 고용한 로비스트들이 누구인지, 그리고 이들이 어떤 의원들을 집중적으로 만나는지를 추적해야 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의회에서 AI 정책을 다루던 보좌관이나 관료들이 퇴직 후 어느 AI 기업으로 이직하는지입니다. 이 ‘회전문 인사’는 규제 포획이 완성되었음을 알리는 가장 확실한 경고등입니다.

이 신호들을 따라가다 보면, 의사당과 실리콘밸리 사이의 보이지 않는 돈의 흐름과 권력의 역학관계를 좀 더 명확하게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Q&A: 독자들이 던질 법한 질문들

Q. 그렇다면 의회가 AI를 아예 쓰지 말아야 한다는 뜻인가요? A. 아닙니다.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습니다. AI를 활용해 의정 활동의 효율을 높이는 것은 당연하고 필요한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쓰느냐입니다. 첫째, 특정 기업의 제품에 종속되지 않도록 여러 AI 도구를 의무적으로 비교, 평가해야 합니다. 둘째, AI를 활용해 만든 법안 초안이나 보고서는 그 사실을 명시하고, 어떤 AI를 어떻게 활용했는지 투명하게 공개해야 합니다. 기술의 혜택은 누리되, 그 기술에 지배당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필요합니다.

Q. 오픈AI가 딱히 불법 로비를 한 것도 아닌데 너무 과한 해석 아닌가요? A. 직접 돈을 주고받는 고전적인 로비보다 무서운 것이 ‘문화적 헤게모니’ 장악입니다. 의회가 자발적으로 특정 기업의 제품과 그 방식을 업무의 표준으로 삼는 순간, 그 기업은 돈 한 푼 안 들이고 가장 강력한 로비를 한 셈이 됩니다. 시장의 규칙을 정하는 주체가 우리 제품의 ‘파워 유저’가 되는 것보다 확실한 성공 전략은 없습니다. 이는 불법이 아니기에 더 강력하고 무서운 것입니다.

Q. 한국 국회도 곧 AI를 도입할 텐데, 우리도 같은 문제를 걱정해야 하나요? A. 물론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더 심각한 문제를 안게 될 수 있습니다. 국내 AI 기술 기반이 미국 빅테크에 비해 약하기 때문에, 특정 해외 기업에 대한 기술적, 데이터적 종속이 훨씬 심화될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 국회가 아무런 전략 없이 해외 AI 서비스를 도입한다면, 우리는 국가의 입법 및 정책 결정 과정이라는 ‘두뇌’의 일부를 외주 주는 셈이 될 수 있습니다. 공공 부문의 균형 잡힌 AI 도입 전략과 국내 AI 산업 생태계 육성을 함께 고민하지 않는다면, 청구서는 훨씬 더 비싼 값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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