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진의 실리콘밸리 · 2026-09-05
만점짜리 시험지 내고도 주가가 떨어진 까닭: '제로 트러스트' 잔치의 청구서를 묻다
Zscaler는 완벽한 실적을 발표하고도 주가가 하락했습니다. 이는 시장이 화려한 기술 뒤에 숨은 '비용'과 '경쟁'이라는 더 큰 그림을 보기 시작했다는 신호이며, 돈잔치의 청구서가 누구에게 돌아갈지 묻기 시작했다는 뜻입니다.

“시장은 지스케일러라는 회사 자체를 의심한 게 아니라, 그 주식에 매겨진 '가격표'가 너무 비싼 것 아니냐고 질문을 던진 것입니다.”
만점짜리 시험지와 F학점 주가, 대체 무슨 일인가?
최근 실리콘밸리에서 흥미로운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클라우드 보안 시장의 선두 주자인 지스케일러(Zscaler)가 시장 예상을 뛰어넘는 분기 실적을 발표했습니다. 다음 분기 예상 실적(가이던스)까지 자신감 있게 내놓았습니다. 보통 이런 날은 주주들이 샴페인을 터뜨리는 날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였습니다. 주가는 오히려 꽤 큰 폭으로 하락했습니다. 만점짜리 시험지를 제출했는데 F학점을 받은 셈입니다.
많은 투자자들이 어리둥절했습니다. 최고경영자(CEO)인 제이 초드리는 회사의 핵심 기술에 대해 매우 낙관적인 전망까지 내놓은 터라 충격은 더 컸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단순히 시장의 변덕으로 치부하고 넘어가기엔 석연찮은 구석이 많습니다. 식당에 비유하자면, 미쉐린 별을 막 받았는데 건물주가 갑자기 월세를 세 배로 올리겠다고 통보한 격입니다. 음식 맛(실적)은 최고지만, 가게의 존속 자체(사업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 겁니다.
이 현상은 지스케일러 한 회사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 기술주 시장, 특히 미래의 성장 가치를 한껏 당겨와 현재 가격에 반영하고 있는 소프트웨어 기업들을 시장이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신호입니다. 시장은 더 이상 '성장'이라는 단어에 무조건 환호하지 않습니다. 그 화려한 성장 뒤에 숨어 있는 청구서를 꼼꼼히 따져보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이 이상한 성적표를 해부해, 돈잔치의 이면을 들여다보려 합니다.
'제로 트러스트' 보안, 택배기사님 신분증 검사로 이해하기
지스케일러의 주력 상품을 이해하려면 먼저 '제로 트러스트(Zero Trust)'라는 개념을 알아야 합니다. 말이 좀 어렵지만, 원리는 간단합니다. 옛날 회사 보안 시스템은 성벽과 해자로 둘러싸인 성과 같았습니다. 일단 성문 안으로 들어오면(회사 내부망에 접속하면), 대부분의 공간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었습니다. 내부자는 일단 '믿을 수 있다'고 가정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로 트러스트는 정반대입니다. '아무도 믿지 말고, 항상 검증하라'가 기본 원칙입니다. 최신 오피스 빌딩을 생각하면 쉽습니다. 회사 정문을 통과했다고 끝이 아닙니다. 사무실에 들어갈 때, 회의실에 들어갈 때, 심지어 화장실에 갈 때도 매번 사원증을 찍어야 하는 곳들이 있습니다. 제로 트러스트는 바로 그런 개념입니다. 모든 사용자, 모든 기기가 어딘가에 접속을 시도할 때마다 신분을 증명하고 권한을 확인받아야 합니다.
지스케일러가 내세우는 '에이전트 기반 제로 트러스트'는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여기서 '에이전트'는 고객사 직원들의 컴퓨터나 스마트폰에 직접 설치하는 작은 감시 프로그램입니다. 이는 마치 모든 직원에게 개인 경호원을 한 명씩 붙여주는 것과 같습니다. 이 경호원(에이전트)은 직원이 회사 내부망에 있든, 집에서 일하든, 카페에 있든 상관없이 항상 옆에 붙어서 그가 누구인지, 허가된 장소에만 가는지, 수상한 행동은 하지 않는지를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보고합니다. 원격 근무와 클라우드 서비스가 보편화된 지금, 데이터가 회사 담장 안에만 머물지 않기 때문에 이런 방식이 각광받고 있습니다.
이처럼 기술적으로는 매우 합리적이고 강력한 모델입니다. CEO가 자신감을 내비칠 만합니다. 문제는, 시장은 기술의 우수성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성장'이라는 이름의 빚잔치: 밸류에이션의 허상
문제의 핵심은 '밸류에이션(Valuation)'에 있습니다. 밸류에이션은 기업의 가치를 평가하는 행위를 말하는데, 주식 시장에서는 보통 현재 주가가 그 회사의 가치를 얼마나 높게 혹은 낮게 평가하는지를 의미합니다. 지스케일러 같은 고성장 기술주의 주가는 현재 벌어들이는 이익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미래에 벌어들일 엄청난 이익에 대한 '기대감'이 가격에 미리 반영되어 있습니다.
어릴 적 하던 '딱지치기'를 떠올려 봅시다. 문방구에서 파는 일반 딱지는 100원입니다. 그런데 누군가 어떤 희귀한 왕딱지를 가지고 있고, 친구들 사이에서 그 딱지가 내일쯤이면 1만 원의 가치가 될 거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오늘 그 딱지를 5,000원을 주고서라도 사려고 할 겁니다. 지스케일러의 주가는 바로 그 '왕딱지'처럼 거래되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회사가 '이번 분기 실적 아주 좋습니다. 다음 분기도 좋을 겁니다'라고 발표한 것은, 왕딱지 주인이 '내 딱지, 어제보다 더 반짝거리지?'라고 말한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5,000원을 낸 투자자들은 '반짝이는 것' 이상을 기대했습니다. '이 딱지로 동네 딱지를 다 딸 수 있다'는 확신, 즉 앞으로 1만 원, 2만 원이 될 것이라는 압도적인 증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회사가 내놓은 전망은 '아주 좋음'에서 '더 아주 좋음'으로 가는 수준이었지, 시장의 상상을 뛰어넘는 '초격차'를 보여주진 못했습니다. 기대치가 너무 높았던 탓에, 훌륭한 실적 발표가 오히려 실망감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흔한 오해 하나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좋은 회사가 좋은 주식'이라는 등식은 항상 성립하지 않습니다. 지스케일러는 의심할 여지 없이 좋은 기술을 가진 훌륭한 회사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물건도 비싸게 사면 탈이 나는 법입니다. 시장은 지스케일러라는 회사 자체를 의심한 게 아니라, 그 주식에 매겨진 '가격표'가 너무 비싼 것 아니냐고 질문을 던진 것입니다.
역사는 반복된다: 닷컴 버블의 다크 파이버를 기억하십니까?
이런 현상은 처음이 아닙니다. 역사는 종종 비슷한 모습으로 반복됩니다. 저는 1990년대 후반 닷컴 버블 시기의 '다크 파이버(Dark Fiber)' 사태가 떠오릅니다. 당시 사람들은 인터넷 사용량이 폭발적으로, 거의 무한하게 증가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통신사가 너도나도 땅을 파고 어마어마한 양의 광케이블을 매설했습니다.
이때 실제 사용되지 않고 예비로 깔아두기만 한 광케이블을 '다크 파이버'라고 불렀습니다. 미래의 수요를 보고 선제적으로 투자한 것입니다. 모두가 인터넷 시대의 '혈관'을 까는 이 사업에 열광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어땠을까요? 인터넷 사용량은 정말로 폭발했지만, 공급이 수요를 훨씬 더 앞질러버렸습니다. 길은 충분히 깔렸는데 달릴 자동차가 예상보다 적었던 셈입니다. 결국 케이블은 남아돌았고, 막대한 빚을 내서 땅을 팠던 회사들은 줄줄이 파산했습니다.
오늘날 클라우드 보안 시장이 바로 21세기형 '다크 파이버'가 될 수 있다는 경고음이 울리고 있습니다. 클라우드, 인공지능, 원격 근무의 시대에 보안은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지스케일러, 크라우드스트라이크, 팔로알토 네트웍스 같은 회사들은 이 시대의 '디지털 혈관' 혹은 '디지털 면역체계'를 까는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시장의 성장성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너무 많은 플레이어들이 동시에 이 '혈관'을 깔겠다고 달려들고 있습니다. 시장이 이들의 장밋빛 전망만큼 빠르게 성장해주지 않는다면, 결국 과잉 공급과 출혈 경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시장은 지스케일러의 실적 발표를 보고 '혹시 다크 파이버의 전철을 밟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을 느낀 것입니다.
| 특징 | 1990년대 후반 '다크 파이버' | 2020년대 '클라우드 보안' |
|---|---|---|
| 기반 기술 | 인터넷 보급 | 클라우드 컴퓨팅, 원격 근무, AI |
| 시장의 믿음 | 데이터 트래픽의 무한 성장 | 모든 기업의 디지털 전환 및 보안 필수화 |
| 투자 논리 | '인터넷의 혈관'에 투자 | '디지털 경제의 면역체계'에 투자 |
| 공급 과잉의 위험 | 실제 수요를 초과하는 광케이블 매설 | 유사 솔루션 난립, 가격 경쟁 심화 가능성 |
| 청구서 | 파산한 통신사와 손실 본 투자자 | 아직 모름. 이것이 지금 시장의 질문. |
진짜 전쟁터는 기술이 아닌 '영업'이다
많은 기술 기업들이 '최고의 기술이 승리한다'는 신화를 믿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기업용 소프트웨어 시장의 역사는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특히 거대 기업을 상대로 하는 B2B 시장에서는 '최고의 기술'이 아니라 '최고의 영업망'과 '최적의 구매 편의성'을 가진 제품이 이기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여기서 지스케일러의 진짜 고민이 시작됩니다. 지스케일러의 경쟁자들은 팔로알토 네트웍스, 포티넷 같은 공룡들입니다. 이들은 이미 수많은 대기업에 방화벽 같은 기존 보안 장비나 서비스를 공급하며 깊은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제로 트러스트 솔루션을 파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일 수 있습니다.
'번들링(Bundling)'이라는 무서운 무기를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동네 빵집에서 아무리 맛있는 유기농 식빵을 만들어도, 대형마트에서 자기네 PB 상품 우유를 사면 식빵을 반값에 끼워준다고 하면 경쟁이 될까요? 팔로알토 같은 회사들이 바로 그 대형마트입니다. 그들은 기존 고객에게 '저희 보안 솔루션 계약 연장하시면, 요즘 유행하는 제로 트러스트 기능은 거의 공짜로 붙여드릴게요'라고 속삭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번들링의 힘입니다.
이로 인해 두 번째 흔한 오해, 즉 '최고의 제품이 시장을 지배한다'는 믿음이 깨집니다. 기업의 구매 담당자 입장에서 생각해 봅시다. 이미 잘 쓰고 있는 팔로알토 제품에 약간의 비용만 더 내면 '충분히 좋은(good enough)' 제로 트러스트 기능을 쓸 수 있습니다. 반면 기술적으로 조금 더 낫다는 지스케일러 제품을 쓰려면, 별도의 회사와 새로 계약하고, 기존 시스템과 연동하고, 직원 교육도 다시 시켜야 합니다. 웬만큼 압도적인 성능 차이가 나지 않는 한, 대부분의 구매 담당자는 더 쉬운 길을 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국 지스케일러는 자신의 기술이 단순히 '더 좋은' 수준이 아니라, 이런 모든 불편과 비용을 감수하고서라도 반드시 써야만 하는 '대체 불가능한' 것임을 시장에 증명해야 하는 힘겨운 싸움을 앞두고 있습니다. 진짜 전쟁터는 연구실이 아니라 고객사 미팅룸인 셈입니다.
돈잔치의 청구서, 누가 받게 될까: 우리가 추적해야 할 신호들
결국 제 집착으로 돌아옵니다. '이 돈잔치의 청구서는 결국 누가 받는가.' 현재 클라우드 보안 시장은 분명 돈잔치입니다. 막대한 투자가 몰리고, 기업 가치는 천정부지로 솟았습니다. 하지만 잔치가 끝나면 누군가는 설거지를 해야 합니다. 그 청구서는 누가 받게 될까요?
가능성은 여러 가지입니다. 지스케일러 같은 선도 기업이 경쟁자들의 도전을 뿌리치지 못하고 성장세가 꺾인다면, 고점의 '왕딱지'를 샀던 투자자들이 가장 먼저 청구서를 받게 될 겁니다. 이미 이번 주가 하락으로 일부는 청구서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반대로 지스케일러가 압도적인 기술력으로 시장을 평정한다면, 안일하게 번들링에 의존했던 경쟁자들이 혹독한 청구서를 받아 들게 될 것입니다.
기업 고객들은 어떨까요? 단기적으로는 경쟁 덕에 더 좋은 제품을 더 싼 가격에 쓸 수 있으니 이득입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한두 개 기업이 시장을 독과점하게 되면 선택권이 줄고 가격 협상력이 약해져 결국 그들이 청구서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 복잡한 구도를 읽기 위해 다음과 같은 신호들을 추적해야 합니다.
- `매출 성장률의 '기울기'`: 단순히 성장률 숫자 자체가 아니라, 그 숫자가 이전 분기보다 가팔라지는지 완만해지는지를 봐야 합니다. 지스케일러 같은 주식에겐 40% 성장이 35%로 떨어지는 것이 10% 성장이 5%로 떨어지는 것보다 훨씬 치명적인 신호입니다.
- `영업이익률과 고객 획득 비용(CAC)`: 경쟁이 심해지면 고객 한 명을 데려오기 위해 더 많은 돈을 써야 합니다. 마케팅과 영업 비용이 늘어나 이익률이 떨어진다면, 이는 '출혈 경쟁'이 시작됐다는 경고등입니다. 고객 획득 비용(Customer Acquisition Cost)은 신규 고객 한 명을 유치하는 데 들어간 총비용으로, 이 수치가 계속 올라간다면 위험 신호입니다.
- `대형 고객의 '순 확장률(Net Revenue Retention)'`: 이것이 가장 중요한 지표일 수 있습니다. 작년에 1억을 썼던 기존 고객이 올해는 1억 2천만 원을 쓴다면 순 확장률은 120%가 됩니다. 이 수치가 높다는 것은 고객들이 그 회사 제품에 만족해 더 많은 서비스를 추가로 구매한다는 뜻이며, 경쟁사의 '번들링' 공격을 효과적으로 방어하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이 수치가 꺾이기 시작하면 정말로 위험합니다.
Q&A: 독자가 던질 법한 질문들
Q. 그래서, 지스케일러 주식을 지금 팔아야 합니까? A. 저는 투자 조언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제 역할은 가격표에 어떤 위험과 기대가 담겨 있는지 해설하는 것입니다. 이번 주가 하락은 시장이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격에 반영하기 시작했다는 뜻입니다. 만약 당신이 지스케일러의 기술적 해자가 매우 깊고 넓어서 경쟁사들의 도전을 막아낼 것이라 믿는다면, 지금을 오히려 매수 기회로 볼 수도 있을 겁니다. 반대로 '다크 파이버'의 역사가 반복될 것이라 생각한다면 보수적으로 접근해야겠죠.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논리에 돈을 걸고 있는지 명확히 아는 것입니다.
Q. '제로 트러스트'는 그냥 유행 아닌가요? 곧 사라질 개념 같은데요. A. 용어 자체는 유행을 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근본 철학은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우리의 업무 환경과 데이터가 더 이상 회사라는 물리적 공간에 갇혀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벽과 해자' 모델은 이미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아무도 믿지 않고 모든 것을 검증한다'는 원칙은 클라우드와 원격 근무 시대에 유일하게 논리적인 보안 모델입니다. 논쟁의 지점은 제로 트러스트가 필요한가 아닌가가 아니라, 누가 그 시장의 표준을 장악할 것인가입니다.
Q. CEO가 자기 회사 좋다고 말하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요? 왜 그걸 기사에서 중요하게 다루나요? A. 당연히 모든 CEO는 자기 회사를 좋게 말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무엇을' 구체적으로 강조하는지를 보면 회사의 전략과 고민이 보입니다. 제이 초드리 CEO는 막연히 '우리 실적 좋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에이전트 기반' 모델의 '강력한 모멘텀'을 콕 집어 강조했습니다. 이는 경쟁사들의 번들링 공세에 맞서 '기술적 차별성'으로 정면 돌파하겠다는 선언입니다. 일종의 출사표인 셈입니다. 이제 시장과 고객들이 그 차별성에 기꺼이 돈을 지불할 것인지를 지켜볼 차례입니다. CEO의 말은 그 회사의 싸움 방식을 알려주는 공개된 작전 지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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