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진의 실리콘밸리 · 2026-09-21
트럼프의 '뒷거래' 명세서: AI 반도체와 전기차, 누가 청구서를 받나
트럼프 측근과 중국 부총리의 베이징 밀담은 단순한 외교가 아닙니다. AI, 반도체, 핵심 광물을 둘러싼 거대한 돈의 흐름을 재설계하는 '사업 협상'에 가깝습니다. 이 돈잔치의 청구서는 결국 누가 받게 될지 미리 짚어봅니다.

“이 돈잔치의 청구서는 결국 누가 받게 될지, '안보'라는 포장지를 뜯어보고 그 내용을 들여다봐야 할 때입니다.”
실리콘밸리에서 돈의 흐름을 좇다 보면, 정치와 경제는 한 몸이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게 됩니다. 특히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그렇습니다. 최근 트럼프 전 대통령의 측근이자 헤지펀드 거물인 스콧 베슨트가 베이징에서 허리펑 중국 부총리를 만났다는 소식은, 이런 관점에서 아주 흥미로운 사건입니다. 오는 9월로 거론되는 트럼프-시진핑 회담의 전초전이라는 해석이 많습니다.
언론은 '미중 갈등 완화'나 '탐색전' 같은 외교적 수사를 사용하지만, 저는 이 만남을 다르게 봅니다. 이것은 'USA 주식회사'와 '차이나 주식회사'의 차기 CEO 유력 후보와 현직 경영진이 벌이는 물밑의 인수합병 조건 협상입니다. 논의된 의제는 AI, 핵심 광물, 무역. 모두 21세기 산업의 혈맥과 같은 것들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협상의 결과로 발생하는 비용, 즉 청구서를 누가 받아들게 되느냐입니다.
겉은 '안보', 속은 '장사'
미국 정치인들이 중국을 이야기할 때 '국가 안보'라는 말을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합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화려한 수사 뒤에는 지극히 현실적인 '장사'의 논리가 숨어 있습니다. 이번 베슨트와 허리펑의 만남은 그 민낯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헤지펀드 매니저가 왜 협상 테이블에 나설까요? 국가 간의 협상이란 본질적으로 거대한 자산과 부채의 재분배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누가 얼마를 얻고, 누가 얼마를 잃을지를 정하는 일입니다. 이런 계산은 외교관보다 금융 전문가에게 더 익숙한 영역일 수 있습니다. 베슨트의 등장은 앞으로 펼쳐질 미중 관계가 이념 대결보다는 철저한 손익 계산에 기반할 것이라는 강력한 신호입니다.
이들의 대화는 두 거대 기업이 핵심 사업부의 미래를 놓고 벌이는 담판과 같습니다.
- 'AI 반도체'라는 가장 수익성 높은 신사업부의 지배구조는 어떻게 할 것인가?
- '핵심 광물'이라는 필수 원자재 공급망을 누가 통제하고, 그 비용은 누가 부담할 것인가?
- '무역'이라는 기존 사업의 이익 배분(관세)은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은 앞으로 수십 년간 글로벌 산업 지형을 결정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나오는 비용은 고스란히 기업과 소비자, 그리고 투자자들에게 전가됩니다. '안보'라는 포장지에 싸인 청구서가 우리 모두에게 날아오고 있는 셈입니다.
AI와 반도체: '핵심 기술'이라는 비싼 청구서
현재 AI 모델을 훈련하고 운영하는 데 필수적인 고성능 반도체, 즉 GPU(그래픽 처리 장치)는 사실상 엔비디아라는 한 회사가 독점하고 있습니다. 미국 정부는 이 독점적 지위를 활용해 중국의 AI 기술 발전을 억제하려 합니다. 중국으로 들어가는 첨단 반도체의 수도꼭지를 잠그는 수출 통제 조치가 대표적입니다.
이 상황을 쉽게 비유해 보겠습니다. 미국은 지금 엔비디아라는 유일한 공장에서만 나오는 'AI라는 건물을 지을 수 있는 특수 설계된 최고급 포크레인'을 중국이라는 거대 건설 현장에 팔지 못하게 막는 셈입니다. 단기적으로 중국의 공사 속도는 늦춰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중국은 어떤 나라입니까. 결국 자체적으로 포크레인 공장을 짓겠다고 나설 것입니다. 시간과 돈이 더 들겠지만, 한번 기술을 확보하면 그때는 미국의 통제가 무용지물이 됩니다.
이 전략은 양쪽 모두에게 청구서를 남깁니다.
- 미국 기업의 청구서: 엔비디아 같은 기업들은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을 잃게 됩니다. 이는 곧바로 매출 감소로 이어집니다. 2023년 엔비디아 전체 매출의 약 20~25%가 중국에서 나왔습니다. 이 돈을 포기하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 뼈아픈 일입니다.
- 중국 기업의 청구서: 당장 최고의 장비 없이 AI 개발 경쟁에 나서야 합니다. 성능이 낮은 대체 칩을 쓰거나, 비싼 값에 암시장에서 칩을 구해야 합니다. 이는 고스란히 비용 증가와 기술 개발 지연으로 이어집니다.
- 결국 우리 모두의 청구서: 기술이 두 개의 진영으로 나뉘면, 표준이 달라지고 호환이 안 되는 '갈라파고스' 현상이 심해집니다. 이는 혁신의 속도를 더디게 하고, AI 서비스의 가격을 높이는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마치 과거 VHS와 베타맥스가 경쟁하던 시절처럼,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베슨트와 허리펑은 바로 이 비용을 어떻게 나눌지, 그리고 어디까지 서로의 '포크레인' 기술을 인정하고 거래할지 흥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핵심 광물: 21세기 '석유'를 둘러싼 조용한 전쟁
전기차 배터리, 스마트폰, 반도체 칩. 이 모든 첨단 제품에 없어서는 안 될 것이 바로 리튬, 코발트, 희토류 같은 핵심 광물입니다. 문제는 이 광물의 채굴부터 가공까지, 공급망의 거의 모든 단계를 중국이 장악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흔히 하는 오해가 있습니다. 중국이 이 광물들을 땅속에 가장 많이 묻어두고 있는 나라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실은 다릅니다. 예를 들어 코발트는 콩고가, 리튬은 칠레와 호주가 최대 매장국이자 생산국입니다. 중국의 진짜 힘은 '가공' 단계에 있습니다.
이를 커피에 비유하면 이해가 쉽습니다. 세계 최고의 커피 원두(광물)는 남미나 아프리카에서 생산됩니다. 하지만 이 원두를 가져다가 로스팅하고 블렌딩해서 전 세계 스타벅스 매장에 공급하는 가장 큰 공장(제련 및 가공 시설)을 중국이 독점하고 있는 셈입니다. 아무리 좋은 원두를 손에 넣어도, 중국의 공장을 거치지 않으면 우리가 마시는 아메리카노 한 잔이 나오기 힘든 구조입니다.
미국과 서방은 이 구조를 깨고 싶어 합니다. '탈중국'을 외치며 미국이나 동맹국에 새로운 로스팅 공장을 지으려 합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막대한 돈과 시간이 듭니다. 수십 년간 중국이 환경 규제를 무시하며 쌓아 올린 저비용 구조를 단기간에 따라잡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결국 이 비용은 누군가 지불해야 합니다.
| 항목 | 현재 (중국 중심 공급망) | 미래 (미국 중심 재편 시) |
|---|---|---|
| 가공 비용 | 낮음 (느슨한 환경 규제, 규모의 경제) | 매우 높음 (엄격한 환경 규제, 초기 투자 비용) |
| 공급 안정성 | 중국 정부의 정책 리스크에 취약 | 초기에는 불안정, 장기적으로는 안정화 가능 |
| 최종 제품 가격 | 상대적으로 저렴 | 상당 기간 비싸질 수밖에 없음 |
| 청구서 수신자 | (과거) 중국의 환경과 노동자 | (미래) 미국 납세자(보조금), 전기차/배터리 기업(원가 상승), 소비자(가격 인상) |
결국 트럼프 행정부가 다시 들어서든, 바이든 행정부가 유지되든 '핵심 광물 공급망 재편'이라는 청구서는 이미 발송되었습니다. 그 청구서의 액수를 줄이기 위해, 혹은 청구서 지불을 남에게 떠넘기기 위해 베슨트와 허리펑이 마주 앉아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역사 속 평행선: '플라자 합의'는 정장 입고, '베이징 밀담'은 노타이로
이런 물밑 협상을 보면 저는 1985년의 플라자 합의가 떠오릅니다. 당시 미국은 극심한 무역 적자에 시달렸고, 그 원인을 '너무 강한 달러'와 '너무 약한 엔화' 탓으로 돌렸습니다. 뉴욕 플라자 호텔에 G5 재무장관들이 모여 '달러 가치를 인위적으로 낮추자'고 합의했습니다. 이는 일본의 수출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미국의 수출을 늘리려는 명백한 의도였습니다.
결과는 어땠습니까? 플라자 합의 이후 엔화 가치는 폭등했고, 일본 수출 기업들은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일본 정부는 내수 경기를 살리기 위해 금리를 낮추고 돈을 풀었고, 이는 일본 역사상 최악의 부동산·주식 버블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버블이 꺼지면서 '잃어버린 20년'이 시작됐습니다. 미국은 무역 적자 문제를 해결했을까요? 천만에요. 적자 상대가 일본에서 중국으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베슨트와 허리펑의 만남은 '21세기판 플라자 합의'의 예고편처럼 보입니다. 30여 년 전에는 정장을 입은 재무장관들이 공식적으로 만났지만, 이제는 트럼프의 '오른팔'과 시진핑의 '경제 책사'가 노타이 차림으로 비공개 회동을 합니다. 형식은 달라졌지만 본질은 같습니다. 세계 경제의 규칙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바꾸려는 강대국들의 힘겨루기입니다. 플라자 합의가 일본 경제의 명운을 갈랐듯, 이번 협상의 결과는 향후 수십 년간 중국과 글로벌 산업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평행선은 2000년대 초 닷컴 버블 시기 유행했던 '벤더 파이낸싱(Vendor Financing)'입니다. 당시 시스코 같은 통신장비 업체들은 재정이 부실한 신생 통신사들에 장비를 팔기 위해 자신들의 돈을 빌려주었습니다. 장부상으로는 매출이 늘지만, 실제로는 '왼쪽 주머니의 돈을 오른쪽 주머니로 옮기는' 회계적 착시에 불과했습니다. 지금 미국 정부가 CHIPS 법이나 IRA(인플레이션 감축법)를 통해 자국 기업에 막대한 보조금을 주는 것도 비슷한 측면이 있습니다. 정부가 나서서 수요를 창출하고 공급망을 구축하는, 거대한 규모의 벤더 파이낸싱입니다. 이 돈잔치가 끝나면 청구서는 누가 받게 될까요? 역사는 항상 반복됩니다.
흔한 오해 두 가지: '완전한 단절'과 '트럼프 예측불가론'
미중 관계를 볼 때 많은 사람이 빠지는 함정이 있습니다. 이 함정에서 벗어나야 돈의 흐름을 제대로 읽을 수 있습니다.
첫째, '미국과 중국이 완전히 단절(디커플링)될 것'이라는 오해입니다. 이는 불가능하고, 누구도 원하지 않습니다. 애플의 아이폰은 중국에서 조립되고, 중국의 중산층은 나이키 신발과 스타벅스 커피를 소비합니다. 월가의 금융 자본은 여전히 수익성 높은 중국 시장을 기웃거립니다. 지금 벌어지는 일은 완전한 이혼이 아니라, '위험 관리(디리스킹)'라는 이름의 재산 분할 협상에 가깝습니다. 즉, 모든 것을 끊는 게 아니라 AI 반도체나 핵심 광물처럼 '이것만은 절대 너희에게 줄 수 없다'는 몇 가지 핵심 분야의 주도권만 확실히 가져오겠다는 것입니다. 나머지는 예전처럼, 혹은 새로운 규칙 하에서 계속 거래할 것입니다.
둘째, '트럼프는 예측 불가능한 인물'이라는 오해입니다. 그의 언행은 충동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그의 정책 기조에는 일관된 사업적 논리가 있습니다. 바로 '거래'와 '레버리지(지렛대)'입니다. 그는 재임 시절에도 고율 관세를 무기 삼아 중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려 했습니다. 그의 목표는 중국의 붕괴가 아니라, 미국에 더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를 새로 체결하는 것입니다. 베슨트를 베이징에 보낸 것 자체가 재집권 시 사용할 레버리지를 미리 만들고, 상대의 패를 읽으려는 지극히 '예측 가능한' 행동입니다. 그에게 외교는 이상이 아니라 비즈니스입니다.
투자자를 위한 신호등: 이 세 가지만 추적하십시오
그렇다면 우리는 이 거대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무엇을 보아야 할까요? 수많은 뉴스 속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진짜 의미 있는 신호를 포착해야 합니다. 저는 다음 세 가지를 추적하시라고 권합니다.
- '중국 외 지역에서 가공된 핵심 광물'의 가격 프리미엄: 앞으로 '메이드 인 차이나'가 아닌 핵심 광물에는 웃돈이 붙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호주산 리튬을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가공했다면, 중국산보다 비싸게 거래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 가격 프리미엄의 크기는 공급망 재편의 속도와 비용을 가늠하는 가장 정확한 바로미터가 될 것입니다.
- 엔비디아·AMD 실적 발표의 '중국 관련 언급': 이들 기업의 경영진이 실적 발표 컨퍼런스 콜에서 중국 관련 질문에 어떻게 답하는지 귀 기울여야 합니다. '수출 통제의 영향이 예상보다 크다/작다', '중국 시장용 저사양 칩의 판매가 순조롭다/부진하다' 같은 발언 하나하나에 다음 정책의 방향과 시장의 온도가 담겨 있습니다. 숫자로 찍히는 매출보다 더 중요한 신호입니다.
- 미국 정치인들의 '공급망' 관련 법안 발의 내용: '중국'이나 '안보' 같은 추상적인 단어 대신, '의약품 원료', '선박용 크레인', '드론 부품'처럼 구체적인 품목을 언급하며 특정 공급망의 자국화를 주장하는 법안이 나온다면 주목해야 합니다. 이는 다음 타격 목표를 예고하는 신호탄이며, 해당 산업에 속한 기업들의 주가에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신호들을 꾸준히 추적하면, 거대한 담론 뒤에 숨은 돈의 진짜 흐름을 읽을 수 있습니다.
Q&A: 독자들이 던질 법한 질문들
Q. 트럼프가 재선되면 정말 중국과 전쟁이라도 나는 것 아닙니까? A. 군사적 전쟁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봅니다. 전면전은 양쪽 모두에게 파국이며, 무엇보다 '장사'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트럼프가 원하는 것은 상대를 굴복시키는 것이지, 시장 자체를 파괴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관세 전쟁, 기술 전쟁, 금융 전쟁 같은 '총성 없는 전쟁'은 지금보다 훨씬 격화될 것입니다. 그의 목표는 이기기 위한 전쟁이지, 함께 죽기 위한 전쟁이 아닙니다.
Q. 그렇다면 지금 중국 주식이나 관련 펀드에 투자해야 할까요? A. '어느 나라에 투자할까'는 이제 낡은 질문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규칙 하에서 돈을 버는 기업이 어디인가'를 물어야 합니다. 국적과 상관없이, 미중이 만드는 새로운 공급망의 길목을 지키며 '통행세'를 받는 기업이 승자가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중국을 대체할 새로운 핵심 광물 가공 시설을 짓는 캐나다 기업, 혹은 미국의 보조금을 받아 멕시코에 공장을 짓는 한국의 배터리 소재 기업이 될 수도 있습니다. 국가가 아닌 '기업' 단위로 옥석을 가려야 합니다.
Q. 베슨트라는 사람, 결국 트럼프 개인의 측근일 뿐인데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 아닙니까? A. 그렇지 않습니다. 현대 자본주의에서 정부와 거대 자본은 분리할 수 없습니다. 특히 월스트리트의 언어와 워싱턴의 언어, 그리고 베이징의 언어를 모두 구사하며 그 사이를 번역하고 중재할 수 있는 인물은 극히 드뭅니다. 베슨트의 역할은 단순한 메신저가 아닙니다. 그는 이번 협상의 성격이 '정치'가 아닌 '금융 거래'임을 상징하는 인물 그 자체입니다. 그의 존재는 이 모든 논의의 최종 목표가 명예나 이념이 아닌, 재무제표상의 이익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가 움직이는 곳에 돈이 움직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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