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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석의 기술 해부 · 2026-09-13

AI 직원이 내게 스팸을 보냈다

정우석글 · 정우석

당신의 메일함에도 'AI 직원'을 팔겠다는 스팸이 도착했을지 모릅니다. 오늘은 이 낯 뜨거운 영업 편지를 해부하며, AI라는 단어가 어쩌다 중고차 시장의 '무사고' 스티커처럼 변했는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AI 직원이 내게 스팸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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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이 발전할수록, 기술을 쓰는 사람의 안목과 철학이 더 중요해지는 역설. 이것이 바로 AI 시대의 본질일지 모릅니다.

제 메일함에도 어김없이 도착했습니다. 'AI 직원이 당신 사업의 비용을 절감하고 생산성을 폭발시켜 준다'는 내용의 이메일이었습니다. 발신자는 'iLands'라는 처음 들어보는 회사. 이들은 자신들의 'AI 에이전트'가 인간 직원을 대체할 수 있다며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고 있었습니다. 읽는 내내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엔지니어의 시선으로 기술을 오래 들여다보면,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동물적인 감각이 생깁니다. 그리고 이 이메일은 온몸으로 '나는 가짜요'라고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물론 혹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AI가 세상을 바꾼다는 뉴스가 연일 쏟아지니, 우리 회사만 뒤처지는 건 아닌가 불안한 마음이 드는 건 당연합니다. 바로 그 불안감을 파고드는 것이 이런 'AI 스팸'의 핵심 전략입니다. 하지만 과장을 한 꺼풀만 벗겨보면, 그 안에는 낡고 익숙한 장사꾼의 모습이 보입니다. 오늘은 이 뻔뻔한 스팸 메일을 해부하며 AI 시대의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진짜 혁신과 허울뿐인 마케팅을 가려내는 법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AI 직원인가, 자동응답기인가?

iLands가 주장하는 'AI 에이전트'는 대체 무엇일까요? 이들의 홍보 문구만 보면 마치 영화에나 나올 법한,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복잡한 업무를 척척 해내는 지능적인 존재 같습니다. 하지만 이메일 어디에도 이 'AI 직원'이 정확히 어떤 기술로,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습니다. 이는 마치 '한 번 맛보면 인생이 바뀌는 특제 소스'를 판다고 하면서 레시피는커녕 재료조차 알려주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제가 며칠간 관련 자료를 찾아보고 이들의 웹사이트를 분석해 본 결과, 이들이 말하는 'AI 에이전트'의 실체는 아마 이런 것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 미리 정해진 규칙에 따라 특정 작업을 반복하는 단순 자동화 스크립트.
  • 여러 앱의 기능을 서로 연결해 주는 서비스.

이것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업무 자동화'라는 이름으로 존재해 온 기술입니다. 예를 들어, 특정 이메일이 오면 자동으로 내용을 구글 시트에 정리하고, 슬랙으로 알림을 보내는 식의 작업입니다. 이런 기능들을 연결해주는 것을 보통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라고 부릅니다. API는 식당의 메뉴판과 같습니다. 식당(앱)이 어떤 요리(기능)를 제공하는지 알려주고, 손님(다른 앱)이 그 메뉴판을 보고 원하는 요리를 주문(요청)할 수 있게 해주는 약속이죠. 이런 API들을 엮어서 자동화 흐름을 만드는 서비스는 이미 '재피어(Zapier)'나 '메이크(Make)' 같은 훌륭한 도구들이 많이 나와 있습니다.

문제는 iLands가 이런 기존의 자동화 기술을 'AI'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판다는 점입니다. 진짜 AI 에이전트라면 정해지지 않은 문제에 부딪혔을 때 스스로 해결책을 찾으려 시도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항공권 예매를 맡겼는데 원하는 날짜에 표가 없으면, 앞뒤 날짜나 근처 공항을 검색해 대안을 제시하는 식입니다. 하지만 iLands의 'AI 에이전트'가 그런 수준의 추론 능력을 갖췄을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이들은 그냥 잘 만들어진 자동응답기에 '인공지능 비서'라는 명찰을 붙여준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4세대 언어와 노코드의 망령

이런 현상이 처음은 아닙니다. 기술의 역사는 '누구나 전문가처럼 될 수 있다'는 달콤한 약속의 반복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은 대부분 절반의 성공과 절반의 실패로 끝났습니다.

1980년대를 기억하는 분이라면 '4세대 언어(4GL)'나 'CASE(Computer-Aided Software Engineering) 도구'를 떠올릴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시 기술자들은 복잡한 프로그래밍 언어(3세대 언어)를 몰라도, 사람이 쓰는 말에 가까운 4세대 언어를 이용하면 누구나 쉽게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물론 일부 단순한 작업에서는 생산성이 올랐지만, 조금이라도 복잡한 기능을 구현하려면 결국 C언어나 코볼 같은 3세대 언어를 다루는 진짜 개발자가 필요했습니다. 4세대 언어는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났습니다.

2010년대에는 '노코드(No-Code)'와 '로우코드(Low-Code)'가 그 계보를 이었습니다. 코딩 한 줄 없이 마우스 클릭만으로 앱이나 웹사이트를 만들 수 있다는 약속은 매력적이었습니다. 실제로 간단한 쇼핑몰이나 예약 페이지 정도는 비전문가도 뚝딱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업이 커지고 기능이 복잡해지면서 문제는 시작됩니다. 노코드 플랫폼이 제공하는 기능의 한계에 부딪히거나, 유지보수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결국 중요한 시스템은 다시 전문 개발자들이 처음부터 만드는 길을 택하곤 합니다.

iLands의 'AI 에이전트'는 바로 이 '4세대 언어'와 '노코드'의 2024년 버전입니다. 기술의 이름만 바뀌었을 뿐, '복잡한 본질은 가리고 쉬운 껍데기만 팔겠다'는 속내는 똑같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을 표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시대유행어 (Buzzword)약속 (Promise)실체 (Reality)
1980년대4세대 언어, CASE 도구코딩 없이 프로그램 개발제한된 기능, 복잡한 문제는 결국 개발자 투입
2010년대노코드/로우코드클릭만으로 앱 제작간단한 앱은 가능, 확장성/유지보수 한계
2024년AI 에이전트 (iLands류)AI가 사업 운영을 자동화단순 자동화 스크립트, 'AI'는 마케팅 용어일 뿐

역사는 반복됩니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그 잠재력을 과장해 한몫 챙기려는 이들은 언제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레퍼토리는 놀라울 정도로 비슷합니다.

'AI 스팸'은 왜 돈이 될까?

이쯤 되면 궁금해집니다. 이렇게 속이 뻔히 보이는 장사가 과연 될까요? 놀랍게도, 됩니다. 그리고 생각보다 잘 될 수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비용 구조, 둘째는 사람의 심리입니다.

먼저 비용 구조를 봅시다. 이메일 스팸은 인류 역사상 가장 효율적인 마케팅(?) 도구 중 하나입니다. 이메일 100만 통을 보내는 데 드는 비용은 거의 0에 가깝습니다. 만약 100만 명 중 단 10명(0.001%)만 월 10만 원짜리 서비스에 가입해도, 회사는 매달 100만 원의 매출을 올립니다. 밑져야 본전인 장사입니다.

iLands의 배후로 지목되는 카이신 탕(Kaixin Tang) 같은 인물들은 바로 이 점을 노립니다. 그들은 훌륭한 제품을 만들어 시장의 인정을 받으려는 게 아닙니다. 그저 가장 값싼 방식으로 가장 많은 사람에게 그물을 던져, AI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과 기대감을 가진 몇몇이 걸려들기를 기다릴 뿐입니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제품의 품질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이메일 주소를 수집해 얼마나 많은 스팸을 보낼 수 있느냐입니다.

두 번째는 심리입니다. 이 스팸의 주된 타겟은 기술 전문가가 아닙니다. 동네에서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사장님, 마케팅 예산으로 고민하는 중소기업 팀장님처럼 AI를 잘 모르지만 뒤처지기 싫은 사람들입니다. 이들에게 'AI 직원'이라는 단어는 구체적인 기술 사양보다 훨씬 강력하게 다가옵니다. 마치 건강에 좋다는 온갖 효능을 다 적어놓은 정체불명의 약 상자처럼, 'AI'라는 단어 하나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 같은 환상을 심어줍니다.

흔히 하는 오해 중 하나가 '과장 광고도 마케팅의 일부 아닌가?'라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이는 마케팅과 사기를 혼동하는 것입니다. 좋은 마케팅은 제품의 장점을 부각하지만, iLands의 방식은 있지도 않은 장점을 만들어내는 것에 가깝습니다. 이는 마치 폐차 직전의 중고차에 광을 내고 '여성 1인 운전, 무사고' 스티커를 붙여 파는 행위와 같습니다. 결국 들통날 거짓말이지만, 그 순간에는 그럴싸해 보입니다.

'진짜 AI'는 스팸을 보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진짜 혁신적인 AI 기술을 만드는 회사들은 어떻게 자신들을 알릴까요? 적어도 제멋대로 스팸을 보내는 방식은 아닙니다.

오픈AI가 챗GPT를 처음 공개했을 때를 생각해 봅시다. 그들은 불특정 다수에게 '세상을 바꿀 AI'라는 이메일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저 연구자들이나 개발자들이 조용히 써볼 수 있도록 제품을 공개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제품의 성능이 워낙 압도적이었기에,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사용 후기를 공유하고 입소문을 내면서 몇 달 만에 전 세계적인 현상이 되었습니다.

앤트로픽의 클로드(Claude)나 구글의 제미나이(Gemini) 같은 다른 대형언어모델(LLM, 쉽게 말해 사람 말을 흉내 내 문장을 만들어내는 AI)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은 다음의 방식으로 스스로를 증명합니다.

  1. 투명한 기술 문서와 논문: 어떤 원리로 작동하고, 어떤 데이터로 학습했으며, 성능은 어느 정도인지 상세히 공개합니다.
  2. 개발자용 API 제공: 개발자들이 직접 자신들의 서비스에 붙여서 써보고 성능을 검증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둡니다.
  3. 구체적인 사용 사례와 벤치마크: '생산성 향상' 같은 뜬구름 잡는 소리 대신, '특정 코딩 작업에서 개발자보다 40% 빠르다'는 식의 측정 가능한 수치를 제시합니다.

여기서 또 다른 흔한 오해를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iLands 같은 작은 회사가 대기업처럼 마케팅할 수는 없지 않나? 어쩌면 숨은 진주일 수도 있지 않은가?'라는 생각입니다. 일리 있는 말이지만, 적어도 오늘날의 기술 업계에서는 통하기 어렵습니다. 지금은 정말로 기술력이 뛰어난 스타트업이라면 스팸을 보낼 시간에 투자자 미팅을 하고 있을 확률이 훨씬 높습니다. Y 컴비네이터 같은 유명 액셀러레이터나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털들은 잠재력 있는 기술을 찾아내는 데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진짜 실력이 있다면, 스팸이라는 무리수를 두지 않아도 알아서 소문이 나고 돈과 사람이 모입니다.

결국 '진짜 AI'는 스스로 가치를 증명하지, 스팸 메일로 가치를 주장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메일함에 무단으로 침입한 'AI'는 진짜 AI가 아닐 가능성이 99.9%입니다.

'판단의 값'은 더 비싸졌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iLands 같은 회사를 욕하고 무시하면 그만일까요? 저는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고 봅니다. 이 현상은 AI 시대에 우리가 맞닥뜨린 더 큰 변화의 신호탄이기 때문입니다.

과거 정보화 시대의 가장 큰 숙제는 '정보 격차'였습니다.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가 부와 기회의 차이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이제 누구나 손안의 스마트폰으로 세상의 모든 정보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정보의 부족이 아니라, 정보의 과잉입니다.

특히 생성 AI 기술이 발전하면서 가짜 정보, 저품질 정보, 그리고 iLands의 스팸 메일처럼 교묘하게 포장된 허위 정보의 생산 비용이 '0'에 가까워졌습니다. 이제 우리의 과제는 홍수처럼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옥석을 가려내는 것입니다. 즉, '판단'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졌습니다.

과거 엔지니어의 가치가 '만드는 능력'에 있었다면, 이제는 '무엇을 만들지, 무엇을 사지 않을지 결정하는 능력'에서 나옵니다. 사업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예전에는 좋은 기술을 남보다 빨리 도입하는 것이 중요했다면, 이제는 가짜 기술에 현혹되어 돈과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AI 도입'이라는 구호 자체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어떤 문제를 풀기 위해, 어떤 AI 기술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 판단하는 능력이 기업의 성패를 가를 것입니다.

결국 AI는 우리에게서 '판단'의 책임을 덜어주는 도구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더 높은 수준의 판단력을 요구하는 새로운 환경을 만들고 있습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기술을 쓰는 사람의 안목과 철학이 더 중요해지는 역설. 이것이 바로 AI 시대의 본질일지 모릅니다.

독자가 던질 법한 질문들

Q. 그래도 혹시 모르니 한번 써보는 건 어떨까요? 가격도 싸다는데요. A. 겉보기엔 싸 보이지만, 숨겨진 비용이 훨씬 큰 '조삼모사'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당신의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는 비용, 회사의 중요 데이터에 접근 권한을 내주는 보안 위험 비용, 그리고 그 시간에 진짜 제대로 된 해결책을 찾지 못하는 기회비용까지 고려해야 합니다. 이는 마치 연비가 나쁘고 잔고장이 잦은 차를 싸다고 사는 것과 같습니다. 결국 수리비와 마음고생으로 더 큰 비용을 치르게 될 겁니다.

Q. 이런 가짜 AI 말고 진짜 'AI 에이전트'는 언제쯤 쓸 수 있을까요? A. 이미 특정 분야에서는 '진짜'라고 부를 만한 것들이 쓰이고 있습니다. 코드를 짜주는 '깃허브 코파일럿'이나, 고객 문의에 제법 똑똑하게 답하고 실제 업무까지 처리하는 최신 고객센터 챗봇들이 그 예입니다. 하지만 어떤 업무든 맡기면 알아서 해내는 범용 'AI 직원'은 아직 먼 미래의 이야기입니다. 기술적으로는 AI 모델이 여러 단계의 복잡한 추론을 하고, 다양한 도구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능력이 더 발전해야 합니다. 몇 년이 걸릴지, 몇십 년이 걸릴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그 발전의 지표는 유력 AI 기업들의 기술 보고서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겁니다.

Q. AI 스팸과 진짜 AI 마케팅을 구분하는 구체적인 팁이 있을까요? A. 몇 가지 기준을 갖고 보면 의외로 쉽게 구분할 수 있습니다. - '사업 혁신' 같은 추상적인 약속을 하는가, 아니면 '줌 회의록을 요약하고 실행 과제를 추출합니다'처럼 구체적인 기능을 설명하는가? - 기술 문서나 API 명세서처럼 작동 원리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를 투명하게 공개하는가, 아니면 '우리만의 비밀 기술'이라며 감추는가? - 당신의 허락 없이 메일함에 불쑥 찾아왔는가, 아니면 개발자 커뮤니티나 사용자 포럼에서 먼저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가? - 'AI'를 모든 것을 해결하는 마법의 단어처럼 사용하는가, 아니면 특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기술 중 하나로 언급하는가?

이 질문들에 답하다 보면, 진짜 실력 있는 기술과 허풍선이 장사꾼은 자연스럽게 구별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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